12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체코와 한국의 경기. 7회초 1사 1,2루 상황에서 한국 김현수가 체코 멘시크의 타구를 잡기 위해 몸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말 그대로 '고개 숙인 캡틴'이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대표팀은 12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1라운드 B조 체코전을 7-3으로 승리, 3경기 만에 대회 첫 승리를 신고했다. 앞서 호주와 일본에 연거푸 패했던 대표팀은 실낱같은 8강 진출 희망을 살렸다. 13일 B조 최종 중국전에 승리한 뒤 체코-호주전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지려면 기본적으로 체코가 호주를 꺾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체코전 승리로 분위기를 전환했지만, 주장 김현수(35·LG 트윈스)는 웃을 수 없었다. 이날 김현수는 8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호주와 일본전에선 모두 5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호주전 3타수 무안타, 일본전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김현수가 부진하자 대표팀의 중심 타선 화력도 그만큼 떨어졌다. 이강철 감독은 체코전 김현수의 타순을 8번까지 내렸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 중 한 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하위 타선 배치는 극약처방에 가까웠다. 지난해 LG에서 604타석을 소화한 김현수가 8번 타자로 나선 건 전무했다.
김현수는 체코전 2-0으로 앞선 1회 2사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냈다. 6회 1사 후에는 2루수 방면 내야 안타로 이번 대회 첫 안타를 신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경기 기록은 2타수 1안타. 기대했던 활발했던 공격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7회 수비에선 더욱 큰 아쉬움을 남겼다. 6-0으로 앞선 1사 1·2루 위기에서 정철원(두산 베어스)이 보이테흐 멘시크에게 좌익수 방면 타구를 허용했다. 타구가 짧다고 판단한 김현수가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지만, 포구에 실패했다. 타구가 펜스까지 굴렀고 그사이 체코 주자 2명이 모두 득점했다. 대표팀은 8강 진출 희망을 살리려면 '다득점, 최소 실점' 경기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더욱 수비 결과가 뼈아팠다. 이강철 감독은 후속 타자 타석 중 김현수를 최지훈(SSG 랜더스)과 교체했다.
김현수는 대표팀 터줏대감이다. 이번 WBC 전까지 개인 통산 국제대회 출전만 무려 10회. 통산 국제대회 타율도 0.364(209타수 76안타)로 빼어났다. 현재 KBO리그 선수 중 가장 태극마크를 많이 단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4일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국제대회 나갈 때마다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못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그런 것 같다"며 "제가 주장으로 많이 부족한 거 같다. 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거다. 다 같이 좋은 성적을 내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 탓에 사실상 마지막 국제대회라는 마음가짐으로 WBC를 준비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공격과 수비 모두 기대를 밑돈다. 이강철 감독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