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슬램덩크 봤어?” Z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아빠도’라니. 아빠는 ‘당연히’ 봤지. “설마, 너도 봤어?” “당연하지. 요즘 학교에서 아이돌 아니면 ‘슬램덩크’ 얘기밖에 안해.” 세상에. ‘슬램덩크’는 X세대가 학창시절 매주 토요일에 나오는 주간만화를 기다리다 친구들과 돌려봤던 우리 시대의 만화였다. 지난 1월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고 한국에서 400만 관객을 넘어서며 꺾이지 않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슬램덩크’는 어떻게 추억의 X세대 관객을 넘어 Z세대 관객들까지 사로 잡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Z와 Z의 친구에게 물어봤다.
X재국 : 아빠 세대의 만화인 ‘슬램덩크’를 Z세대가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Z연우 : 친구들이 영화관에서 ‘슬램덩크’ 티켓을 찍어 “농놀(농구하고 놀기)”이라는 말을 하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고, 점심시간에는 슬램덩크 유니폼 키링을 사야한다며 아이패드를 붙잡고 있는걸 보고 ‘슬램덩크’를 알게 됐어요. 개봉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친구들이 “너 ‘슬램덩크’ 아직 안봤어?”라고 하길래 어떤 내용인가 궁금해서 학교 끝나고 친구랑 보러 갔는데 보고 나서 “이걸 왜 이제서야 본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또래의 다섯 학생들이 하나의 꿈을 이룬다는 내용이 좋았어요. 우리 청소년들이 지금 제일 고민하고 있는 게 ‘꿈’에 대한 부분이니까요. 꿈을 이루는 내용의 영화는 많지만 ‘슬램덩크’는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여러명이 다같이 땀을 흘리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계속 뚫지 못하는 송태섭에게 한나 코치가 용기를 주고, 포기하려는 강백호를 자극해서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서태웅도 멋있었고, 그렇게 서로를 잡아주며 다시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게 부럽기도 하고 그런 모습에서 ‘청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Z채명 : 저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 ‘슬램덩크’가 유행인걸 보고 아빠한테 여쭤봤더니 지금의 우리처럼 신난 얼굴로 아빠 중고등학교때도 굉장히 유명했던 만화였다고 얘기해주셨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러갔는데 이렇게 가슴 떨리는 열정을 심어주는 만화가 존재한다니, 지친 학업과 인간관계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심어주는 선생님 같은 만화였어요. ‘슬램덩크’는 “어떤 것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줬어요. 저는 그들이 “그냥 마음껏 좋아하는 걸 해, 그게 청춘이야”라고 소리쳐 주는것 같아서 고마웠어요.
X재국 : 그럼 ‘슬램덩크’ 멤버중에 누가 제일 좋아?
Z연우 : 저랑 제 친구들은 대부분 서태웅을 좋아해요. 잘 생겨서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언제나 흔들림이 없고, 왠지 아무 고통없이 쉽게 정상에 올랐을 것 같고 돌잡이 때도 농구공을 잡았을 것 같은 타고난 천재 같아서 좋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위로가 됐던 멤버는 송태섭이었어요. 송태섭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조금은 작은 키에, 절망적인 순간들이 너무 많았지만 농구에 몰두하면서 그 문제들을 극복하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사실 저도 저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는데 저보다 잘하는 애들을 보면 좌절하기도 했는데 송태섭은 농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극복했고 저도 재능보다는 엄청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고 싶어졌어요.
Z채명 : 저는 이 영화에서 강백호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 채소연 때문에 농구를 시작했지만 농구에 대한 마음은 점점 진심이 되어 갔고 농구를 통해 성숙해져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가장 현실적이기도 했고요.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할 수 있을까?” 불안에 떨고 있을 때 강백호는 혼자 “나는 천재니까”라면서 계속 팀이 이길 수 있게 전체적인 분위기를 리드했어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캐릭터였어요.
X재국 : ‘슬램덩크’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Z연우 : 일단 둘다 모험적이지만 디즈니는 항상 결말이 사랑으로 끝나는것 같아요. ‘라푼젤’도 처음엔 바깥에 나가보는게 꿈이었지만 결말은 유진이라는 짝을 만나는 얘기고, ‘신데렐라’도 무도회에 가보는게 꿈이었지만 결말은 왕자님과 결혼하는 거였잖아요. 어릴 때는 디즈니 만화를 보면 뭔가 낭만적이고 아름다워보였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동기와 위로예요. ‘슬램덩크’는 디즈니보다 현실적이고 “그냥 그만 둘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딱 일주일만 더 해보라는 메시지를 주는것 같아서 좋아요.
Z채명 : 디즈니는 그냥 동시같은 느낌이었어요. 절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 많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긴 하지만 모순적으로 너무 현실성이 없어요. 디즈니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시각을 알려줬다면 ‘슬램덩크’는 우리가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역시, 재밌는 스토리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시대를 가리지 않는구나.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는데 두둥둥둥 거리는 베이스 음악에 맞춰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서태웅, 강백호가 걸어나오는 시작 장면에서 마치 어린시절 친구들을 다시 만난 것처럼 설레고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봐 친구들! 우린 여전히 꿈을 드리블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어때?
필자소개=이재국 작가는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하고 ‘컬투의 베란다쇼’, ‘SNL코리아 시즌2’, 라디오 ‘김창열의 올드스쿨’ 등 다수의 프로그램과 ‘핑크퐁의 겨울나라’, ‘뽀로로 콘서트’ 등 공연에 참여했다. 2016 SBS 연예대상 방송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는‘아빠왔다’, ‘못그린 그림’이 있다. 이연우 양은 이재국 작가의 딸로 다양한 재능을 가졌으며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 평범한 청소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