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필자는 영국으로 학부 유학을 하러 갔다. 스포츠가 삶의 낙이었던 필자는 곧 프리미어리그(EPL) 축구, 럭비, 스누커, 크리켓 등 당시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새로운 스포츠와 리그에 빠져들었다.
잉글랜드 축구팀의 이름도 흥미로웠다. 특히 필자가 매료된 클럽명이 있었다. 바로 노팅엄 포레스트였다.
국토의 70%가 산악지역인 한국과 달리 잉글랜드에는 지형이 낮은 구릉지대와 평야가 많다. 삼림지대가 국토의 10%에 불과할 정도로, 잉글랜드는 숲도 귀한 나라다. 대신 잔디가 자라기에 최적인 날씨를 가진 덕분에 이 나라에는 잔디밭이 그야말로 지천으로 깔려 있다. 맨땅을 보기 힘들 정도다. 당시 국내의 열악한 인프라를 생각하며 “우리 축구 선수들도 이런 곳에서 운동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숲(Forest)이 귀한 잉글랜드에서 노팅엄이 이러한 이름을 가진 데에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담겨있다. 노팅엄의 홈구장인 시티 그라운드에서 4.5km 떨어진 곳에는 셔우드 숲(Sherwood Forest)이 있다. 현대 영어에서 포레스트는 삼림 지대를 의미하지만, 중세 시대에는 왕실 사냥 같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법적으로 지정된 땅이라는 의미였다.
역사 전문 채널인 히스토리에서 제작해 인기를 얻은 ‘바이킹스(Vikings)’라는 드라마가 있다. 전설적인 바이킹 군주였던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그의 후손들의 활약을 다룬 이 드라마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은 라그나르의 동생으로 각색돼 나온 롤로(Rollo)다. 전설의 인물일 가능성이 큰 라그나르와 다르게 롤로는 실존 인물이다.
9세기 바이킹은 프랑스 파리를 약탈했고, 상당한 피해를 입힌다. 프랑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며 그들을 쫓아냈으나, 바이킹의 약탈은 계속된다. 이에 프랑스의 샤를 3세는 바이킹과 싸우는 대신 이들을 회유하는 조약을 맺는다. 그 결과 당시 바이킹의 지도자였던 롤로는 샤를 3세의 딸인 기셀라 공주와 혼인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프랑스 북부의 루앙 일대를 하사받아 루앙 백작이 된다. 롤로는 인근으로 지배영역을 넓혀갔고, 이들이 다스린 지역은 ‘노르망디(Normandie, 노르드인의 땅이라는 의미)’라고 불리게 된다.
롤로의 후손들은 세력을 확장하여 공작으로 승격했다. 노르망디 공국은 형식적으로는 프랑스 왕의 신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 세력이었다. 롤로의 고손자인 기욤 2세는 1066년 앵글로색슨이 지배하던 잉글랜드를 정벌하고, 윌리엄 1세가 된다.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가 설립된 것이다. 현재 영국의 윈저 왕조도 노르만 왕조에 뿌리를 두고 있어, 영국 왕실의 시조는 바이킹이었던 롤로였다.
잉글랜드의 군주가 된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은 사냥을 즐겼다. 그의 통치하에 잉글랜드에는 왕실 특권 산림법이 등장한다. 이 법은 귀족들의 사냥감이었던 사슴, 노루, 멧돼지와 그들의 서식지인 녹지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따라서 당시 잉글랜드의 포레스트는 군주와 귀족들을 위한 사냥터였고, 셔우드 숲도 그중 하나였다.
셔우드 숲의 중심에는 대형 오크 나무가 있다. 이곳이 바로 전설적인 의적 로빈 후드와 그의 동료들의 본거지였다. 앵글로색슨이었던 로빈 후드는 그의 오른팔 리틀 존과 메리 맨(Merry Men, 유쾌한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동료들을 이끌고 노르만 지배층이었던 노팅엄 영주와 부패한 주교 등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로빈 후드의 정체와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민간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며 다양하게 변형되고 각색되던 이 전설적인 의적 스토리는 15세기에 처음으로 활자화된다. 그 후 문학, 노래, 텔레비전, 영화 등을 통해 로빈 후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등장해 의적의 대명사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1865년 노팅엄의 클린튼 암스라는 이름을 가진 펍에서 신티(shinty, 스코틀랜드에서 하는 필드 하키와 비슷한 경기)선수들이 모여 하키 대신 축구를 하자는 결의를 다진다. 포레스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들이 첫 경기를 중세 셔우드 숲의 일부였던 포레스트 레크레이션 그라운드에서 했기 때문이다.
클럽은 포레스트 그라운드에서 14년 동안 경기를 했다. 하지만 이 곳은 공유지인 관계로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입장권 수입이 필요했던 클럽은 여러 축구장을 전전한 끝에 1898년 현재의 홈구장인 시티 그라운드에 자리 잡는다.
노팅엄의 1부리그 우승은 한번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유럽 챔피언을 2번이나 차지한 진귀한 기록도 갖고 있다.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던 클럽은 1999년 EPL에서 강등된 관계로 국내 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클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진에 빠져있던 손흥민 선수가 23년 만에 EPL에 복귀한 노팅엄을 상대로 지난 12일 골을 기록했다.
현재 노팅엄은 강등권에서 아슬하게 벗어나 있고, 이 클럽의 첫 한국인 선수인 황의조는 FC서울로 단기 임대로 와 있다. 황의조 선수가 다음 시즌에는 노팅엄 소속으로 EPL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