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B조)에서 2승 2패를 기록, 조 3위에 그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첫 경기였던 호주전에서 7-8로 일격을 당했고, '숙적' 일본전에선 4-13으로 대패했다.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중국전(스코어 22-2 승리)을 치르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중국전 후 대표팀 주장 김현수(35·LG 트윈스)의 발언이 불붙은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13일 중국전을 마치고 인터뷰에서 "코리아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 건 마지막"이라며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이어 김현수는 "내가 부족해서 선수들을 잘 이끌지 못했다. '놀러 왔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다. 성적이 안 좋으면 욕을 먹는 게 맞다"라고 자책했다.
이후에 나온 마지막 말이 문제가 됐다. 그는 "(대회 기간) 대표팀에 많이 나온 야구계 선배들로부터 (WBC 부진에 대해) 위로의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대표팀 경험이 거의 없는) 분들이 (대표팀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같은 야구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아쉬운 것 같다"라고 했다.
이번 WBC 대표팀이 소집되기 전부터 대표팀 밖에서 야구팬의 논란을 부르는 해프닝이 있었다. 베테랑 추신수(SSG 랜더스)가 한 방송에 출연해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김현수가 한국을 대표해서 나갈 실력을 갖췄지만, 나라면 미래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에 헌신적이지 않았던 추신수가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이는 야구팬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대회 중에도 논란은 또 나왔다. 양준혁 해설위원이 이번 대회 한일전에 대해 유튜브 방송을 통해 대표팀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강철 감독은 작전도 없다" “(부진했던 선수들을 가리키며) 배 타고 한국으로 오라”며 수위 높은 발언도 했다.
야구팬들은 김현수의 마지막 발언이 추신수 혹은 양준혁 위원을 겨냥한 게 아니냐고 추측했다. 하지만 누구를 향해 한 말이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김현수가 야구대표팀을 향한 비난에 상처를 입은 당사자 중 하나인 건 분명하지만, 그가 공식 인터뷰에서 이를 굳이 맞받아칠 이유가 있었는지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김현수의 발언은 '대표팀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면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는 편가르기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있고,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와중에 야구인들끼리 싸우는 풍경으로 비칠 수도 있다.
게다가 김현수는 대표팀의 단순한 일원이 아닌 주장을 맡았으며, 대표팀은 팬들의 기대를 훨씬 밑도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한 상황이었다. 안그래도 성적과 경기력에 크게 실망한 팬들은 결코 품위 있다고 하기 어려운 주장의 인터뷰에 또 한번 실망을 표시하고 있다.
다만 김현수의 돌출 발언이 대표팀과 야구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박찬호·이대호 등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찾은 한국야구 대표 레전드 일부는 이번 대회 야구대표팀의 경기력에 일침을 가하면서도, 선수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을 삼가달라고 부탁했다.
이강철 야구대표팀 감독은 "모두 내 탓"이라고 했고,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선수 탓"이라고 했다. 작금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일본과의 실력 차이를 인정한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도 있다.
김현수는 "(국제대회에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또다른 논란을 낳은 그의 발언 탓에 앞으로 대표팀에 승선하는 선수들이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