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대표팀 감독은 지난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인터뷰는 시작부터 '거의' 끝까지 감독의 사과로 진행됐다. 소형준(KT 위즈) 이의리(KIA 타이거즈)의 이름을 거론했지만, 맥락은 그들을 믿고 기다려달라는 변호에 가까웠다.
문제는 마지막 한 마디였다. 인터뷰를 마치려던 찰나 취재진으로부터 마지막 질문이 더해졌다. 특정 투수들에게 부담이 가중되어 일어난 '혹사' 논란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질문을 듣고 굳은 표정을 한 이강철 감독은 "한국시리즈(KS)를 치를 때 투수 몇 명이 뛰는지 좀 알아보신 후에 말씀하시라"며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이번 대회 투수 기용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투구 수 제한 때문에 정규시즌처럼 치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보는 내내 '왜 저 투수가 지금 등판할까'라는 물음표를 만들게 했다. 불펜 투수로 등판했던 이가 몇 일 만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고, 일부 불펜 투수들은 일본에서 치러진 6경기 중 5경기에 모두 등판하기도 했다.
여기에 염경엽 감독이 했던 인터뷰가 불을 질렀다. 염 감독은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당시 "(이강철 감독께) 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니지만 (김)윤식이의 경우 허리가 조금 안 좋기에 관리를 부탁드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윤식은 이번 대회 단 한 경기(일본전)에만 등판했고 아웃 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했다. 페이스를 적절하게 올리지 못했고, 결국 대회 투수진 과부하에 일조한 셈이 됐다. 여기에 같은 팀 마무리 고우석, 셋업맨 정우영 역시 컨디션 난조로 제 몫을 하지 못했다. 세 선수가 대회에서 잡아낸 아웃 카운트는 단 한 개에 불과하다.
이른바 '청탁' 논란은 해프닝에 가깝다. 염경엽 감독은 본지와 통화를 통해 "김윤식에 대한 이야기는 선수들이 투손으로 떠날 때 한 말이었다. 관련 내용이 엉뚱하게 대회 중에 나와 시점에 오해가 생겼다. 그 시기에 몸이 덜 만들어져 했던 말"이라고 해명했다.
이강철 감독은 국가대표 사령탑이다. 대회 성적과 별개로 리그 감독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들어줬다는 건 있어서도 안 되고, 의혹 언급만으로도 감독 본인에게 모욕에 가깝다. 그 점을 고려해도 이강철 감독의 KS 비유는 적절치 않았다. WBC는 정규시즌 전 대회이고, 한국은 고작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아무리 호주전과 일본전이 중요했어도 KS와 같은 끝장 승부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이강철 감독 본인의 야구관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 감독은 13일 중국전 종료 후 “선발을 확실하게 정하고 갔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이 감독이 이끈 KT 위즈 역시 KBO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선발 4승으로 KS 스윕승을 거뒀던 팀이다. 이강철 감독이 2021년 KS처럼 마운드를 운용했다면 1라운드 경기는 모두 고정 선발이 지켰을 것이다.
물론 2021년 KT가 KS의 정석인 건 아니다. 당시 맞상대였던 김태형 두산 베어스 전 감독처럼 약한 선발진을 경기 흐름에 따른 불펜 교체로 보완하는 사령탑도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의 핵심은 빠른 기용이다. 이번 대회 대표팀은 한 박자 느리게 투수를 바꾸다 실점을 '최대화'했다. 세 타자 규정을 의식한 탓이다.
비난과 책임을 한 몸에 지기에는 이강철 감독에게 어려움이 많았다. 호주전 소형준·양현종의 부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최고 마무리 고우석은 담 증세로 단 1구도 던지지 못했고, 홀드왕 정우영도 컨디션 난조로 필승 카드 역할을 못했다. '혹사'라 말하기엔 투수들의 투구 수도 비상식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해도 사실은 짚어야 한다. WBC 1라운드는 KS가 아니다. KS같은 운용도 아니었다. '이강철다운' 운용도 아니었다. 차라리 KS 같았다면, 이강철 감독다웠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 물론 야구에 만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