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선택지가 없다. 황금 세대가 물러난 한국 야구대표팀이 다시 새로운 숙제 앞에 섰다.
한국은 지난 13일을 끝으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B조로 2승 2패를 거뒀고,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불명예를 안았다.
대표팀에게 2023 WBC의 끝은 단순히 한 대회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대표팀을 책임졌던 이른바 황금 세대가 모두 대표팀에서 물러난다.
2008년 스무 살 나이에 처음 대표팀에 승선했던 김현수와 김광현이 대표적이다. 이번 WBC 주장을 맡았던 김현수는 13일 경기 종료 후 "제가 주장을 맡아 선수들을 잘 이끌지 못했다"며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라 선언했다.
김광현은 귀국 후 개인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국가대표란 꿈이었고 자부심이었다. 오늘부터 랜더스의 투수 김광현으로 언제나 그랬듯 경기를 즐길 줄 아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을 던지는 그런 선수로 돌아가려 한다"고 대표팀 은퇴를 전했다.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건 두 사람이 전부가 아니다. 앞서 스프링캠프 출국 전 마지막 태극마크를 시사했던 최정을 비롯해 박병호·양의지·양현종 등은 모두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 될 예정이다. 다음 대회가 2026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용찬·오지환·박건우·고영표 등 30대 선수들의 출전도 장담할 수 없다.
대표팀은 이미 대회 전 세대교체 논란을 겪었다. SSG 랜더스 추신수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당장의 성적보다도 앞으로를 봤더라면 많은 선수가 안 가는 게 맞고, 새로 뽑히는 선수들이 더 많아야 했다. 언제까지 김광현·양현종이냐"라고 한 말이 도화선이 됐다.
8강 진출이 좌절된 후 이순철 해설위원은 본지 관전평을 통해 "국제대회에선 상대 국가를 이기고 좋은 성적을 내 한국 야구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 키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지가 없다. 오는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연령 제한(만 25세 이하 또는 프로 입단 4년 차 이하)에 따라 반드시 젊은 선수들이 출전해야 한다. 11월 열리는 APBC(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역시 만 24세 이하 선수로 출전이 제한된다. 나이 제한이 없는 2026 WBC까지는 3년이 걸리는 만큼 필연적으로 20대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원하지 않아도 세대교체를 해야 하고, 실력 우선으로 하려 해도 베테랑을 뽑기 마땅치 않다.
이강철 감독은 14일 귀국 인터뷰에서 “어린 선수들이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형준·이의리 같은 젊은 선수들이 자기 공만 던졌어도 좋은 결과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두 선수를 질책하는 게 아니다. 이 감독은 "나도 아쉽지만, 본인들은 더 아쉬울 거다. 경험을 쌓았으니 아시안게임, APBC같이 다음 대회에서는 더 좋은 결과 낼 거다. 국민들께서 기다려주신다면 좋은 성과를 낼 거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감독이 언급한 것처럼 어린 투수들은 제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소형준은 호주전에서는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역전패의 첫 빌미가 됐다. 반면 마지막 중국전에서는 안정적이고 공격적인 투구로 3이닝 퍼펙트 투구를 펼쳤다. 상대 팀의 기량 문제였다고만 보기에는 내용 차이가 극단적이었다. 소형준 외에도 황금 세대를 제외한 투수진 대다수가 WBC가 처음이었다. 첫 경기부터 승부처인 호주전을 맞이했고, 연이어 강적 일본을 맞이해 긴장감에 무너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경험 부족은 영원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이강철 감독도 "자신의 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면 그것도 실력"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대회 난이도가 낮은 아시안게임과 APBC에서 납득할 만한 성과가 반드시 나야 다음 WBC에 대한 '견적'이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