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23)에게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어떤 대회로 기억될까. 본선 1라운드 탈락의 참사와 때아닌 혹사 논란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는 국제대회에서 얻은 넓어진 시야에 더 초점을 맞추며 다시금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원태인은 이번 WBC에서 가능성을 밝힌 몇 안 되는 젊은 투수 중 하나다. 중요했던 9일 호주전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고, 10일 숙명의 한일전에도 마운드에 올라 텐뎀(tendem, 두 번째로 등판하는 선발 투수)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 사흘 뒤엔 중국전에 선발로 나서 제 임무를 다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원태인은 7일 한신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도 등판했다. 호주전, 한일전까지 나흘 동안 3경기에 나와 82개의 공을 던졌고, 이틀 휴식 후 중국전에 선발 출전해 또 공을 던졌다. 혹사 논란이 뒤따랐다.
그러나 원태인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19일 취재진과 만난 원태인은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지 않았는데도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이강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원태인의 컨디션은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 막판까지 좋지 못했다. 원태인은 “50%도 올라오지 않았다”라고 자신의 상태를 회상하며 심란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이강철 대표팀 감독이 직접 나섰다. 이강철 감독은 원 포인트 레슨으로 원태인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었다.
컨디션이 워낙 좋지 않았던 탓에 원태인은 호주전이나 한일전 등판은 꿈도 꾸지 못했다. 7일 한신과의 연습경기도 그랬다. 이틀 뒤에 열리는 호주전에 투입될 선수들은 이날 대거 빠졌다. 원태인도 마찬가지. 하지만 계획보다 적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후 이강철 감독이 그에게 다가왔다. “호주전에 던질 수 있지?”
원태인은 감독의 이 한마디가 정말 기뻤다고 회상했다. 그는 “솔직히 (호주전, 한일전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다른 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제가 그런 중요한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다. 믿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안 좋았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도해주시고 믿어주신 이강철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원태인이 고마워한 인물은 이강철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김현수(35·LG 트윈스)와 김광현(35·SSG 랜더스)을 향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두 선수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들의 마지막 순간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원태인은 영광이고 감사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내가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도쿄 올림픽(2021년)부터 (김)현수 형이 대표팀 주장을 맡으셨다. 너무 많은 걸 혼자 짊어지시려고 하는 것 같더라”며 죄송한 마음을 드러낸 뒤, “어렸을 때부터 우러러보면서 컸던 선배들의 마지막 대회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감사했다. 꼭 이 말을 하고 싶었다”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한편, 원태인은 오는 23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한다. WBC 휴식을 취한 뒤 나서는 첫 등판. 원태인은 “지금까진 국가대표 선수로서 모든 걸 다 바치고 왔지만, 이젠 삼성 라이온즈의 원태인으로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보여드리려고 한다. 운동 열심히 하고 쉴 땐 잘 쉬면서 좋은 시즌 보낼 수 있게 하겠다”라며 새 시즌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