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minton - All England Open Badminton Championships - Utilita Arena, Birmingham, Britain - March 19, 2023 South Korea's An Se-young celebrates on the podium after winning the women's singles final Action Images via Reuters/Andrew Boyers/2023-03-19 23:07:25/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한국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21·삼성생명)은 지난 2021년 출전한 도쿄 올림픽에서 매 경기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날리는 모습으로 스포츠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줬다. 상처투성이에 피까지 고인 양쪽 무릎은 안세영 특유의 근성과 투지를 상징했다.
안세영은 도쿄 올림픽 배트민턴 여자단식 8강전에서 당시 세계 랭킹 2위이자 톱시드로 대회에 나선 천위페이(중국)에 0-2로 졌다. 매치 포인트를 내주며 코트 위에 넘어진 안세영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땀과 눈물이 뒤섞인 채 임한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3년 동안 후회 없이 준비해서 이 정도 성과가 나왔다. 그래도 부족했으니 더 열심히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실패를 자양분 삼아 다시 일어선 안세영은 지난 19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2023 전영오픈'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천위페이를 2-1(21-17, 10-21, 21-19)로 꺾었다. 몸을 날려 상대 스매싱을 받아내 범실을 유도하는 플레이가 돋보였다.
1899년 창설된 전영오픈은 배드민턴 국제대회 중 가장 긴 역사를 지녔다. 올림픽·세계선수권에 버금가는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다. 안세영이 최고의 무대에서 아픔을 안겼던 상대에 설욕전을 펼쳤다. 안세영은 1996년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이 대회 여자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방수현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 1996년 애틀랜타 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여자 배드민턴 레전드다. 안세영이 그 계보를 이었다.
안세영은 도쿄 올림픽 이후 강점으로 평가받는 민첩성을 유지하면서도 근력을 강화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그 성과는 지난해부터 드러났다. 2022년 7월 출전한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11월 호주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 올 시즌은 1월 출전한 4개 대회에서 2번(인도네시아 마스터스·인도오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천적' 청산도 가속도가 붙었다. 인도오픈에서 통산 10패(5승)를 당했던 랭킹 1위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에 승리했다. 말레이시아 오픈 준결승전에서도 7연패 포함 8패(2승)를 당했던 천위페이를 잡았다.
안세영은 2월 초, 진천 선수촌에 입촌해 강행군을 이어갔다. 유럽 투어와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큰 대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8일 국가대표팀 후원사(요넥스) 협약식에서 만난 그는 "딱 사흘 정도만 몸 관리를 하고 다시 운동 강도를 높였다. 다른 선수들이 새벽부터 훈련 일정을 소화하는 분위기여서 자극이 되더라"며 웃었다.
안세영은 세계 강호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지난달 13일 열린 독일오픈 준결승전에선 야마구치에 패하며 우승 트로피를 내줬지만, 이번 전영오픈에서 그 야마구치를 꺾고 결승에 오른 천위페이를 잡았다.
광주체중 3학년 때(2017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천재 소녀'라는 별명을 얻었던 안세영은 이제 '셔틀콕 여제' 등극을 바라보고 있다. 야마구치·천위페이와 함께 배드민턴 여자단식 '3강 구도'를 구축했다. 안세영은 전영오픈 우승 뒤 "내 커리어에 한 획이 그어진 것 같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오는 9월 열리는 항정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대한 포부도 감추지 않았다.
epa10531639 Number 6 seed Kim So Yeong (L) and Kong Hee Yong (R) from Korea celebrate victory against Baek Ha Na and Lee So Hee also from Korea during the Women’s Doubles Final of the All England Open Badminton Championships in Birmingham, Britain, 19 March 2023. EPA/Tim Keeton 한국 배드민턴도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전영오픈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땄다. 여자복식 결승전에선 '집안 싸움'을 펼쳤다. 김소영(31·인천국제공항)-공희용(27·전북은행) 조가 금메달, 이소희(29인천국제공항)-백하나(23·MG새마을금고)가 은메달을 땄다. 혼합복식 서승재(24·삼성생명)-채유정(26·인천국제공항) 조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셔틀콕이 전영오픈에서 금·은메달을 2개 이상 획득한 건 2000년 이후 23년 만이다.
한국 배드민턴은 1980~90년대 배드민턴 강국으로 군림했지만, 2000년대 진입 뒤 유럽과 동남아 국가들의 전력이 상승하며 국제무대에서의 입지가 좁아졌다. 2008 베이징 대회 이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노메달'에 머물렀다.
침체기에 빠진 한국 배드민턴은 이후 국제 경쟁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며 재도약을 노렸다. 최근 몇 년 동안 BWF 월드투어에서 정상에 오르는 선수가 늘어났다. 지난해 10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배드민턴 선수권대회에서도 13년 만에 우승하며 유망주 육성 성과까지 보여줬다. 김학균 대표팀 감독이 세대교체를 위해 중용한 백하나도 이번 전영오픈 여자복식 결승에 오르며 성장세를 증명했다. 김 감독은 "가장 큰 목표는 2024년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배드민턴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조급하지 않고,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