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간 40분을 남겨 놓았다면 야구선수들은 무얼 할까요. 보통 30분 남기고는 그라운드로 나가 트레이너와 함께 팀 웜업 (warm-up)을 시작합니다. 40분 남았다면 웜업 직전 입니다. 식사를 마친 뒤 라커룸에서 유니폼 갈아입고 장비를 손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일찍 준비를 끝낸 선수는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듣습니다. 더그아웃으로 미리 나가 그라운드와 관중석 풍경, 주파수에 자신의 감각을 동기화시키는 경우도 보입니다.
이 날만큼은 달랐습니다. 플레이볼 40분 전, 3월 10일 오후 6시20분.
일본 도쿄돔 한국과 일본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WBC) 야구경기를 앞두고 대표팀 이정후 선수는 한국으로 전화를 겁니다. 상대는 소속팀 선배 이용규 선수. 이정후 선수가 귀국 후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일전 직전 너무 긴장됐다. 이용규 선배님 생각이 났다. 선배님이 한일전 경험도 있고 안타를 쳤던 적도 있으니까 여쭤봤다. 전화를 하고 나서 떨리는 마음도 조금 가라 앉았고 경기에 들어가니 긴장도 크게 되지 않았다.”
여러분께선 이정후 선수의 어떤 마음이 느껴지나요? 우리 야구 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또다시 탈락한 일, 확연한 기량차로 팬과 국민을 실망시킨 내용은 야구계의 과제로 남깁니다. 이 글에선 마음을 읽고, 감정을 이해하고, 연결하는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어쩌면 저 장면, 이정후의 마음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회초 공격권을 가진 팀의 3번 타자라면 플레이볼과 동시에 집중력을 100%로 올려야 합니다. 그날 전화통화는 평소 그의 루틴과는 다른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이정후 선수는 그라운드에 나설 마지막 순간까지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은,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압박감. 한국 최고 레벨의 선수가 이토록 부담이 컸다면 다른 선수들은 오죽 힘들었겠습니까. 김현수, 김하성 선수 등의 인터뷰도 그러했습니다. 처음 대표팀에 뽑혀 한일전에 나선 젊은 불펜 투수들 마음은 특히 어떠했을까요? 도쿄돔은 4만여석의 실내 구장이어서 그곳의 함성은 서울 잠실구장 2만여석에서 나오는 그것 보다 2~3배 이상 무게감이 실립니다. 잠실 3루 원정팀 더그아웃으로 꽂히는 서울의 두 프로팀 홈 응원단 함성소리는 뭉둥이로 치고, 칼로 베는 듯한 느낌이라고 어느 경험자는 말합니다. 미뤄 짐작하면 그날 도쿄돔에서 일부 선수는 두렵기도 했을 겁니다.
프로라면 그래선 안된다고요? 양키스의 전설적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도 전성기 시절 “내 뱃 속에 나비가 날아다닌다 (butterfly in my stomach)”고 말했습니다. ‘너무 긴장돼 배 속이 뒤집어 질 것 같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맡은 일 마감을 앞두고 ‘초치기’를 해봤다면 이해하실 겁니다. 의연하기만을 요구할 순 있어도 그건 당사자의 몫이고, 감정-욕구-생각의 계단을 오르며 배워야 합니다.
저는 이정후 선수의 사례에서, 투수들의 부진에서 마음의 루틴 (routine)을 떠올립니다. 상황을 상상해 느끼게 하는 것이 충분하진 않아도 필요한 마음의 준비입니다. 심리 코칭의 영역입니다. 지금이라도 실패한 이후 감정을 배출하게 도와야 합니다. 당시 충격과 마음의 상처로 누군가 속앓이 크게 하고 있을 겁니다. 감정은 누를 수록 용수철 처럼 반대로 튑니다. 비록 부정적이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동료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성숙하게 관리하는 능력은 그 다음 입니다.
최근 김하성 선수가 “분하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감정에 솔직한 그의 모습을 저는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오로지 선수의 몫이어선 안됩니다. 마음읽기. 감정을 제대로 터치할 때 야구도, 삶도 바뀝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A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