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아먀 히데키 감독이 이끄는 일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대표팀은 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WBC 4강 멕시코전을 6-5로 승리, 2009년 이후 14년 만에 대회 결승에 올랐다. 일본은 2006년과 2009년 1·2회 WBC 우승국. 이로써 쿠바를 꺾고 결승에 선착해 있던 '디펜딩 챔피언' 미국과 22일 맞대결한다. 대회 전부터 최고의 흥행 카드로 기대된 '일본-미국전'이 성사됐다.
4강전 히어로는 끝내기 안타를 터트린 무라카미 무네타카(23·야쿠르트 스왈로스)였다. 무라카미는 4-5로 뒤진 9회 말 무사 1·2루에서 끝내기 2타점 2루타를 터트렸다. 한때 일본은 경기 승리 확률이 7.5%(베이스볼 서번트 기준)까지 떨어져 패색이 짙었지만, 무라카미의 스윙 하나로 승리를 챙겼다. 벤지 길 멕시코 WBC 야구대표팀 감독은 경기 뒤 "일본 팀에 모자를 벗어야 한다"며 경의를 표했다. 길 감독은 "어느 팀도 질 자격이 없었지만, 누군가는 이겨야 했다. 두 팀 모두 훌륭한 경기력과 훌륭한 투구를 보여줬다. 어느 팀도 포기하지 않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라카미로선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5번 타자·3루수로 선발 출전한 무라카미는 첫 네 타석에서 무안타로 침묵했다. 2회 첫 타석 헛스윙 삼진, 4회 두 번째 타석에선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6회 세 번째 타석에서 다시 헛스윙 삼진. 7회 네 번째 타석에선 3루수 파울 플라이로 고개를 숙였다. 무라카미는 지난 시즌 홈런 56개를 쏘아 올려 역대 일본 프로야구(NPB) 일본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58년 만에 갈아치웠다. 홈런뿐만 아니라 타격(타율 0.318)과 타점(134개)에서도 1위에 올라 역대 NPB 최연소 타격 3관왕에 오른 '괴물'이다. 하지만 WBC 8강까지 지독한 타격 슬럼프를 겪었고 4강전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멕시코전에선 경기 중 대타로 교체될뻔했다.
경기 뒤 구리야마 감독에 따르면 일본은 7회 무라카미 타석 때 야마카와 호타카(32·세이부 라이온스)가 대타 준비를 했다. 야먀카와는 지난해 홈런 41개를 쏘아 올려 개인 통산 세 번째 퍼시픽리그 홈런왕에 오른 슬러거. 일본은 0-3으로 뒤진 7회 말 2사 1·2루에서 요시다 마사타카(30·보스턴 레드삭스)가 극적인 동점 스리런 홈런을 터트리자 전략을 수정했다. 주자가 사라지자 구리아먀 감독은 그다음 타자 무라카미를 교체 없이 내보냈고 마지막까지 경기를 뛰게 했다. 야마카와는 8회 말 포수 가이 타쿠야(31·소프트뱅크 호크스) 타석 때 대타로 나섰다.
무라카미의 극적인 9회 말 끝내기 안타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구리야마 감독은 "(무라카미는) 마지막 타석에서 팀에 폐를 끼친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을까. 마지막에는 이길 거라고 계속 말했다. 난 믿었다"고 눈물 흘리며 감격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