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최종 엔트리는 '파격'에 가까웠다. 30명의 선수 중 1980년생이 투·타를 통틀어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한 명이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선수 평균 연령이 대회 개막 기준 26.5세로 2021년 도쿄 올림픽 대표팀보다 1세 가까이 젊었다. 2002년생 '최연소' 투수 다카하시 히로토(21·주니치 드래건스)를 비롯해 2000년 이후 태어난 선수가 최종 엔트리의 16.7%인 5명이었다. 일본의 역대 최연소 WBC 대표팀을 꾸린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일본 야구가 과도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구리야마 감독이 고려한 건 경력이 아닌 '기세'였다. 투수 우다가와 유키(25·오릭스 버팔로스)를 대표팀에 발탁한 게 대표적이다. 육성 선수 출신 우다가와는 지난해 1군에 데뷔한 신인으로 '무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재팬시리즈에서 4경기 등판, 5와 3분의 2이닝 10탈삼진 무실점하며 오릭스 우승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1988년생 트리오' 다나카 마사히로(35·라쿠텐 골든이글스) 야나기타 유키(35·소프트뱅크 호크스) 사카모토 하야토(35·요미우리 자이언츠)가 WBC 최종 엔트리에서 낙마했다. 세 선수 모두 도쿄 올림픽 금메달 멤버이자 일본 야구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지만 '젊은 피'에 밀렸다. 일본 프로야구(NPB)에서 더는 최고의 선수들이 아니었다. 리그와 구단에서 급속도로 세대교체가 진행됐고, 이 흐름이 대표팀까지 연결된 셈이다.
일본은 과도기를 슬기롭게 넘겼다. 오히려 기대를 뛰어넘었다. 22일(한국시간) 열린 WBC 결승에서 미국을 3-2로 꺾고 역대 세 번째이자 14년 만에 WBC 정상을 탈환했다. 2017년 준결승에서 당한 1-2 패배를 설욕, 일본으로선 더욱 의미있는 1승이었다. 2017년 준결승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9명의 일본 타자 중 이번 결승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건 야마다 데쓰토(31·야쿠르트 스왈로스) 한 명. 그만큼 새 얼굴의 비중이 컸다.
결승전 3회 불펜이 가동된 일본은 토고 쇼세이(23·요미우리)와 다카하시가 연이어 마운드를 밟았다. 일본 야구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두 선수는 각각 2이닝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7회 등판한 오타 다이세이(24·요미우리)도 1이닝 무실점. 타선에선 무라카미 무네타카(23·야쿠르트) 오카모토 카즈마(27·요미우리)가 나란히 홈런을 쏘아 올려 승리에 힘을 보탰다.
구리야마 감독은 "젊은 선수를 굳이 뽑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리그 성적과 기세를 두루 고려하다 보니 젊은 선수들이 대거 최종 엔트리에 승선했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로 이어졌다. 투수 평균 연령이 24.9세. 2009년 WBC를 뛰었던 다르빗슈는 "(과거와 비교하면) 당시에도 훌륭한 팀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 거 같다"고 말했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예전에는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제대회마다 크게 바뀌지 않는 거 같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물갈이 된 젊은 선수들이 선배들보다 야구를 더 잘하는 모습이었다. (나이가 대부분 어려서) 향후 국제대회에서 이 선수들이 그대로 다 나올 거"라고 전망했다.
반면 한국 야구대표팀은 WBC가 시작하기도 전에 홍역을 앓았다. 오프시즌 미국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추신수(41·SSG 랜더스)가 "언제까지 김광현(35·SSG) 양현종(35·KIA 타이거즈)이냐"고 말한 게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수년간 대표 선수로 활약한 두 선수를 대신해 젊은 선수를 최종 엔트리에 더 포함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추신수의 발언 이후 이번 WBC 대표팀은 세대교체가 됐느냐 아니냐를 두고 한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대표팀의 중심이 여전히 30대 중반의 선수들이지만 리그에서 이들을 뛰어넘는 '젊은 피'가 극히 드물다.
리그와 구단에서 세대교체가 더디게 진행되니 국가대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3회 연속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대표팀은 김현수(35·LG 트윈스)와 김광현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참사에 가까운 성적 탓에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WBC를 통해 '10년의 미래'를 확인한 일본과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