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이유는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과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한다는 것이다. 축구계는 물론 KFA 내부에서조차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FA는 2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고 있던 전·현직 선수와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KFA는 100명의 사면자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8명은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됐던 이들이고, 나머지는 아마추어 무대에서 폭력·사고 등으로 징계를 받았던 이들로 알려졌다. 성폭력·성추행 연루자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사면 결정에 KFA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승부조작 가담자들을 대거 사면한 결정이 큰 논란을 낳고 있다. 당시 제명 징계를 받았던 건 50명인데, 이번 사면을 통해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된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면죄부를 받았다.
승부조작 논란 당시 “암적 존재는 도려내야 한다”며 사과했던 정몽규 당시 프로축구연맹 총재는 KFA 수장이 된 뒤 암적 존재들의 축구계 복귀길을 직접 열어준 꼴이 됐다.
축구계에 따르면 제명 징계를 받은 승부조작 가담자들에 대한 사면 건의는 2~3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징계 이후 10년이 지난 만큼 용서를 해줘야 한다는 게 일부 축구인의 의견이었다. KFA는 거듭 거절해 왔지만, 최근 카타르 월드컵 16강 분위기와 맞물려 내부적으로도 사면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돼 결국 논의에 착수했다.
이사회에서는 조연상 KFA 이사 겸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이 “승부조작 연루 선수들의 사면이 자칫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무관용 원칙이 유지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사면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국 사면이 결정됐다.
승부조작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면을 받게 된 이들은 지도자로 당당하게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승부조작에 가담해 제명 징계를 받았던 이들이 어린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러 범죄 중 가장 큰 병폐인 승부조작을 저지른 이들이, 일선 학교 축구부 코칭스태프 등 지도자로서 복귀가 가능해졌다”며 “대한민국 축구를 선도해야 하는 단체인 KFA가 여론 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면 결정을 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KFA 관계자는 본지를 통해 “물론 죄 자체는 용납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10년 넘게 축구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 것만으로 죗값을 충분히 치렀다고 봐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대두됐다”며 “이사회에서는 KFA가 승부조작을 용인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당부 의견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발표 시기도 논란에 불을 붙였다. KFA는 이러한 내용을 28일 우루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을 불과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점, 선발라인업 발표 5분 전에 발표해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관심이 큰 A매치 직전에 기습 발표하면서 사면 논란이 묻히길 바랐던 꼼수 아니냐는 게 축구계와 팬들의 합리적인 의심이다. 심지어 KFA 내부에서도 “누가 봐도 A매치에 묻어가려는 게 보이지 않나. ‘윗분들’ 생각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이사회는 보통 3, 6, 9월 등에 열리고, A매치도 그 시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열린다. 이사들이 모이기 좋은 만큼 A매치에 맞춰 이사회를 진행해 왔다”며 “KFA 차원의 공식적인 발표 이전에 사면과 관련된 내용이 먼저 언론들을 통해 공개될 경우 일부러 쉬쉬하거나 숨겼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사회가 끝난 뒤 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