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는 지난해 평균자책점 상위 10명 중 한국인 투수가 김광현(SSG 랜더스)을 비롯해 3명뿐이었다. 각 구단이 선발 로테이션에 투입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 혈안이 돼 있다. 자국 선수들이 경험 쌓는 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지난 11일 일본 매체 풀카운트가 진단한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당시 이강철 감독이 이끈 야구대표팀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에서 '숙적' 일본에 3-14로 대패했다. 한국의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되자 일본은 KBO리그의 문제점을 상세히 분석했다. 그들이 주목한 부분 중 하나가 '허약한 마운드'였다. 야구 평론가 사토자키 도모야는 TV 아사히에 출연해 "한국 리그는 주력 투수가 거의 외국인 선수"라며 "KBO리그에선 자국 투수를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3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10개 구단 감독과 주장, 주요 선수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날 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개막전 선발이었다. 10개 구단 감독이 4월 1일 열리는 개막전 선발을 모두 발표했는데 '토종 선발'을 내세우는 건 SSG와 키움 히어로즈 두 구단에 불과했다.
왼손 에이스 양현종을 보유한 KIA는 외국인 투수 숀 앤더슨을 개막전 선발로 낙점해 '김광현 VS 양현종 매치업'이 불발됐다. NC 다이노스 역시 WBC 대표인 구창모가 아닌 외국인 투수 에릭 페디에게 시즌 첫 경기를 맡겼다. 김종국 KIA 감독과 강인권 NC 감독은 "(앤더슨과 페디의) 컨디션과 구위가 가장 좋다"고 입을 모았다.
개막전 5경기 중 국내 선발이 맞붙는 경기가 단 하나도 없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개막전 선발은 어느 순간 외국인 투수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진다. 국내 선발을 고집했던 한화 이글스마저 올해는 노선을 바꿨다. 한화는 2021년과 2022년 김민우가 개막전 투수였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전통적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한국인 선발을 고집했다. 올 시즌은 그런 전통을 깨고 스프링캠프부터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버치 스미스가 등판한다"고 예고했다.
LG 트윈스와 KT 위즈는 "(개막전에서) 서로를 이기기 위해 선택했다"며 케이시 켈리와 웨스 벤자민의 이름을 언급했다. WBC에서 활약한 토종 에이스 박세웅을 보유한 롯데는 댄 스트레일리, WBC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원태인의 소속팀 삼성은 데이비드 뷰캐넌이 중책을 맡는다.
두산 베어스의 선택도 라울 알칸타라였다. 두산은 시범경기 내내 사이드암스로 최원준이 강한 임팩트(3경기, 평균자책점 1.32)를 보여줬지만, 개막전 선발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알칸타라는 한국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고 현재 컨디션도 좋다. 어떤 팀과 붙더라도 쉽게 공략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개막전은 팬들의 이목이 쏠리는 '빅 게임'이다. 어느 경기보다 승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변수가 적은 외국인 투수를 내보내는 게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SSG와 키움의 선택은 눈길을 끌기 충분하다. 올해 개막전에서 토종 에이스의 자존심을 세우는 건 김광현(SSG)과 안우진(키움) 둘 뿐이다. 김광현은 개인 통산 네 번째, 안우진은 지난해에 이어 통산 두 번째 개막전 선발로 출격한다. 김원형 SSG 감독은 "김광현은 다들 아시겠지만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대한민국 1번 에이스"라고 극찬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도 "안우진은 팬 여러분들이 아는 것처럼 자타공인 최고 투수라고 생각한다. 아직 부족한 게 있지만 계속 발전해나가고 큰 경기를 즐기고 강력한 투구를 할 수 있는 선수여서 개막전 선발로 낙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 프로야구(NPB)는 KBO리그에 하루 앞선 31일 막을 올린다. 개막 시리즈로 열리는 6경기(12개 팀) 중 외국인 투수가 선발 등판하는 건 요미우리 자이언츠(타일러 비디)밖에 없다. KBO리그와 달리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골든이글스) 오가와 야스히로(야쿠르트 스왈로스)를 비롯한 각 구단 토종 에이스들이 개막전을 책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