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 스틸.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술취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응급의료센터가 있다는 것에 대한 쟁점이 최근 뉴스에서 다뤄졌다. 2012년부터 전국 19곳의 대형병원 응급실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생겼다고 하는데, 집주소도 못 댈 만큼 취한 사람들을 위한 구급대원과 의료진의 고충이 점차 깊어진다고 한다. 음주에 관대한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은 ‘어나더 라운드’(2022)에서 다룬 덴마크 음주문화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심각한 것 같다. ‘더 헌트’(2012)라는 걸출한 영화의 시나리오도 직접 써서 연출했던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크와 배우 매즈 미켈슨의 조합이라 영화적 완성도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마르틴(매즈 미켈슨)은 같은 학교 교사인 톰뮈(토마스 보 라센)와 페테르(라르스 란데), 니콜라이(마그누스밀랑) 등과 절친이다. 그들은 각각 체육과 음악, 심리학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배우는 데는 의욕이 없지만, 고등학생에게도 음주 제한이 없는 덴마크인지라 맥주 마시기 대회 같은 것은 과도하게 즐긴다. 반대로 몇몇 학생들은 입시 성적 올리기에만 관심이 많다. 학생 가르치는 것도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진 교사 4인방은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최근 수업에 대한 불만으로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질타를 받던 마르틴부터 이 실험에 들어간다. 그러자 마르틴 본인도 강의에 집중도가 떨어져 수업 시간에 학생이 나가 버리기도 하던 수업이었는데, 갑자기 활기가 넘치고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 교사로 변신한다. 있는 둥 마는 둥 아빠를 보던 아이들과 관계도 좋아지고, 심드렁하던 아내와도 좋아진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이 모두 알코올 실험에 동참한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최고의 수업 효과를 보게 된다.
교내 창고에 술을 몰래 숨겨 놓고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고자 했지만, 늘 조금씩 술에 취하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중독이 생기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어느날 저녁 만취한 그들은 길거리에서 쓰러져 잠들기도 하고, 겨우 기어가다시피 집을 찾아간 사람도 요의를 참지 못해 침대에 실례까지 하게 된다.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교사들이었지만, 술로 인해 가시화된 그들의 불만은 점차 삶을 위협하게 된다. 급기야 교사회의에서 취중수업의 소문이 언급 된다. 이젠 젊음이 사라져가는 40대가 된 중년들의 불안으로 영화는 점차 폭발 상태로 진입한다. '어나더 라운드' 스틸.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이 영화는 “젊음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라는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어 말로 시작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실존적 선택을 하는 인간의 근본적 기분을 ‘불안’으로 보았던 철학자의 말로 시작한다는 것은 이 영화가 인간 삶의 불안함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졸업 면접 시험에 앞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시험을 포기하려는 학생에게 용기를 가지라며 교사가 몰래 가져다 먹인 알코올 덕분에 실패에 대한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 학생은 면접 시험을 잘 보게 된다. 졸업 면접 시험 문제는 키에르케고어의 ‘불안’ 개념을 설명하는 것인데, “키에르케고어는 불안이란 실패라는 관념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고 봤다. 중요한 것은 실패라고 볼 수 있으며, 타인과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차분하게 설명해 졸업시험에 무사히 합격하게 된다.
삶의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음주가, 인간을 잠식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절제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가장 좋아하는 것 때문에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도 “내가 너희에게 준 술은 무수한 생명이 뒤섞여 있는 카오스의 웅덩이다. 너희가 빠져 있겠느냐, 헤어 나오겠느냐?”고 말했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