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고 했다. 바로 그 왼손 파이어볼러 기쿠치 유세이(32·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무실점 호투로 '구속'값을 했다.
기쿠치는 27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5와 3분의 2이닝 4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시즌 4승을 챙겼다. 단 1개의 볼넷만 내주는 동안 탈삼진이 8개에 달했다.
올 시즌 기쿠치는 4승 무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 중이다. 기쿠치는 일본 프로야구(NPB) 시절부터 최고 시속 158㎞ 이상을 던져 MLB의 주목을 받았다. 기대치를 바탕으로 기쿠치는 지난 2019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7년 1억 900만 달러 대형 계약을 맺고 미국에 상륙했다.
그러나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못했다. 기쿠치의 강속구는 볼이 아니면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로 던져졌고, 시애틀에 있던 3년 동안 평균자책점이 4.97에 불과했다. 결국 시애틀이 팀 옵션을 실행하지 않으면서 FA(자유계약선수)가 된 그는 토론토로 둥지를 옮겼다. 토론토에서도 첫 해는 6승 7패 평균자책점 5.19. 여전했다.
기쿠치는 올해는 달라졌다는 걸 27일 경기에서 보여줬다. 기쿠치는 1회 초부터 화이트삭스 엘비스 앤드루스와 앤드류 본을 연속 삼진으로 잡고 출발했다. 루이스 로버트 주니어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2루를 노리는 그를 잡아내 첫 이닝을 단 세 타자로 마무리했다. 이어 2회 초에도 삼진을 추가하며 삼자범퇴로 마친 그는 3회 초 위기에서도 다시 앤드루스와 만나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5회 처음으로 주자 두 명을 내보냈다. 기쿠치는 선두타자 앤드류 베닌텐디에 우전 안타를 맞고, 세비 자발라에 볼넷을 허용하면서 1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까지 기쿠치였다면 장타를 맞고 대량 실점했껬지만, '올해의 기쿠치'는 달랐다. 그는 후속 타자 레닌 소사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았고, 로미 곤잘레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다시금 위기를 막아냈다.
6이닝은 채우지 못했지만, 실점 없이 마운드에 내려간 기쿠치 덕에 토론토는 이날 8-0 대승을 거뒀다. 시즌 초 불안했던 선발진의 마지막 한 조각을 기쿠치가 제대로 채우고 있다. 오히려 여름 복귀를 준비했던 류현진의 자리는 물론 지난해 에이스였던 알렉 마노아도 에이스를 자신할 수 없게 됐다. 토론토로서는 행복한 고민이 펼쳐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