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 주는가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이다. 보여주지 않는 부분에서 관객과 오해 없이 교감하는 감독은 탁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변성현은 탁월한 감독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부터 ‘킹메이커’를 지나 ‘길복순’까지 지난 세 편의 작품을 통해 변성현 감독은 흉내내기 어려운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 나아가 세계를 완성했다. 주절주절 늘어놓는 대신 비유와 은유로 은근히 던져놓는 말맛, 완급 조절의 끊는 기술이 작품이다.
변성현 감독의 작품들이 어떤 거대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다. 전작들 간 장르적 공통점이나 딱히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 세 작품을 연결 지어 보게 되는 큰 고리가 있다. ‘아이러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교도소에서 만난 범죄조직의 2인자 재호(설경구)와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 ‘길복순’은 킬러 생활을 은퇴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살인청부업자이자 엄마인 길복순(전도연)의 이야기를 각각 그렸다. 범죄, 드라마, 액션으로 장르도 배경도 서사도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이들 인물들이 저마다의 모순과 딜레마를 껴안고 산다는 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길복순은 엄마가 된 이후 고민에 빠진다. 엄마는 하나의 생명체를 잉태하고 길러내는 존재. 사람을 죽이기만 했던 사람이 누군가를 길러내는 일을 부여받았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다. 길복순은 딸을 낳는 대신 아이로 인해 일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겠다고 회사와 약속했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고, 결국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촉발하는 촉매제가 된다.
죽이는 킬러로 남을 것인가 살리는 엄마로 살아갈 것인가. 길복순의 고민이 마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였던 ‘햄릿’을 떠올리게 한다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속 재호와 현수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다. 섞일 수 없는 출신의 두 사람이 함께하는 방법은 결국 서로를 파괴하는 것뿐. 물론 그런 사랑의 끝은 대개 비극이다.
이런 모순의 백미를 보여주는 건 ‘킹메이커’다. 명분과 대의를 갖춘 김운범은 이기는 법을 모른다. 애초에 이기려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대의를 이루기 위해 이기고 싶고, 이기는 방법을 아는 서창대와 손을 잡는다. 김운범이 만드는 세상을 보고 싶은 서창대는 그를 선거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끝내 그의 곁에 나란히 서진 못 한다. 김운범이 빛나면 빛날수록 그의 대의와 걸맞지 않는 서창대는 더욱 어둠 속으로 숨어야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변성현 감독은 영화에 시각적으로 녹여냈다. 인물들의 얼굴에 빛과 그림자가 쏟아질 때 관객들은 그의 내면에 있는 욕망과 그가 처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쓸데없는 서술이 없는 담백함이다.
‘길복순’에서 비슷하게 사용된 것이 붉은색과 초록색의 대비다. 붉은색 재킷을 입고 살인을 하는 길복순은 딸을 만나러 가기 전엔 그린빛으로 가득한 마트에서 장을 본다. 어쩐지 자신과 닮은 것 같은 딸의 가방에서 담배 말보로 레드가 나오면 기겁을 하고, 스팸을 집어먹는 딸 앞에 억지로 시금치를 밀어놓는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딸 재영(김시아)이 복순의 장바구니에서 굳이 빨간 사과를 꺼내 먹는 장면에선 실소가 터진다. 하여튼 삶이란 참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킹메이커’와 ‘길복순’만 놓고 봐도 그렇잖은가. 명분이 있는 자(김운범)는 이길 방법을 고민하지만, 늘 이겨온 전설의 킬러 길복순은 명분을 고민한다. ‘자식 앞에 떳떳한 살인이 있는가’를 두고.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안중근 모두 사람을 죽인 공통점이 있더라”는 재영의 말은 복순의 그런 고민조차 우습게 밟아버리고 말지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흥행 성적과 별개로 탄탄한 마니아층 덕분에 오랜 시간 회자되고 있다. 이 영화 팬들을 일컬어 ‘불한당원’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굳이 ‘불한당원’이 아니더라도 이번 연휴 시간이 된다면 변성현 감독의 전작들을 쭉 훑어보길 권하고 싶다. 대사로 들려주기보단 보여주는 작업에 탁월한 변 감독의 영화에서는 두 번, 세 번 봐도 새롭게 발견하는 지점이 있다.
이번에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는 특히 러시아어 표현들이 눈과 귀에 들어왔다. ‘길복순’에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차민규(설경구)가 들어가는 작업 장소의 간판이 ‘아케론’이다. 아케론강은 그리스의 지하세계를 흐르는 강 가운데 하나로 저승을 감싸고 있다. 이것만 봐도 차민규의 앞날은 예견된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선 고병철(이경영)이 러시아 마피아에게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발음은 “스파시바”가 맞지만 고병철은 이를 “시파스바”라고 한다. ‘이 허술한 양반 딱 뒤통수 맞겠다’ 싶다. 감독이 발음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골때리는 장면이 됐다.
‘불한당’ 때부터 눈여겨보고 ‘킹메이커’에선 변성현 감독에게 완전히 압도됐지만, 어쩐 일인지 변 감독이나 그의 작품에 대한 글다운 글을 한 번도 못 썼다. 잘쓰고 싶어서 미루고, 미루다 보면 결국 안 하게 되는 아이러니. 세상 참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