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심판위원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스포츠윤리센터 조사를 받고 있는 데다, 새 위원장을 선임할 기회까지 있었는데도 일단 동행을 택한 것이다. 정작 수사권이 없는 윤리센터는 조사에 애를 먹고 있어 자칫 사실상의 위원장 공석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리그를 비롯해 한국 축구 심판 관리·배정 업무를 담당하는 KFA 심판위원회 업무에도 지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11일 축구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선임된 김동진 KFA 심판위원장은 최근 스포츠윤리센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앞서 KFA에 김 위원장의 비위 행위에 대한 투서가 접수됐다. KFA는 이를 토대로 김 위원장과 관련자들에 대한 자체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부인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에 신고해 현재까지 투서 내용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공정이 가장 중요한 심판위원장에 대한 투서가 있었고,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일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KFA가 나서서 동행을 끝낼 명분은 있었다. 그러나 정몽규 회장은 김 위원장의 거취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심판위원장이 먼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3월 말 승부조작범을 포함한 축구인 100인에 대한 사면 논란과 관련해 부회장단·이사진이 총사퇴하면서 이사직을 맡고 있던 심판위원장도 함께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자연스러운 교체가 가능했던 셈. 그러나 대대적인 새 인사 과정에서도 김동진 위원장의 거취는 결정되지 않았다. 김동진 위원장이 물러난 것은 아닌데, 윤리센터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업무를 하지 못하는 사실상의 공백 상태다.
정몽규 회장은 새 이사진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심판위원장과 관련된 질문에 “스포츠윤리센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결과를 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좋은 분이 있으면 새로 뽑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김 위원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직접 결단을 내리기보다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건을 접수한 윤리센터가 김 위원장과 관련인들에 대한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이다. 윤리 센터 관계자는 “강제 수사권도 없고 조사권만 가지고 있어 애로사항이 있다. 앞서 KFA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았던 이들인 만큼 이번 조사에는 비협조적이라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조사가 불가피하게 지연될수록 정 회장이 기다리는 김 위원장의 조사 결과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K리그를 포함해 한국 축구 내 모든 심판의 관리와 배정 등을 담당하는 심판위의 수장 공백 기간도 늘어나는 셈이다. 현재 한창 리그가 진행 중인 K리그는 KFA의 인사 결정을 기다리느라 심판위원장 없이 2023시즌을 치르고 있다. 심판위원장의 공백은 결코 작은 구멍이 아니다. KFA의 지지부진한 인사 결정 여파가 K리그 등 한국 축구 전반에 걸쳐 이어지는 셈이다.
KFA 관계자는 “지금은 3명의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심판위가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업무 분장은 잘되어 있다”고 해명했다. 위원장은 없지만 부위원장 3인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는 설명으로 들린다. 이 관계자는 “그래도 위원장 자리의 공석이 길어지면 KFA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마땅한 사람도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의 심판위원장 공백이 한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에 K리그에서는 오심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체 KFA가 심판위원장 자리의 무거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건지 의심스럽다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