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한화 선발 문동주가 역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동주(20·한화 이글스)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체인지업을 던지고도 무너졌다.
문동주는 지난 1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3회 말 2사 2·3루 상황에서 LG 김현수를 상대로 6구째 시속 149.2㎞ 체인지업을 던졌다.
이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기록통계업체인 스포츠투아이가 2014년부터 피치트래킹시스템(PTS)으로 측정한 체인지업 구속 중 가장 빠른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4월 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LG 고우석이 던진 시속 148.2㎞였다. 이날 문동주는 슬라이더 역시 시속 149.3㎞를 찍어 개인 최고 기록을 썼다. 리그 최고 기록은 지난해 9월 23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고우석이 기록한 시속 150.8㎞다.
문동주는 이미 KBO리그 구속의 새 역사를 쓴 투수다. 지난 12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 원정 경기에서 1회 말 박찬호를 상대로 시속 160.1㎞ 강속구를 던졌다. 국내 투수 중 최초로 시속 160㎞를 넘겼다.
신기록을 쓰고도 웃지 못했다. 이날 문동주의 기록은 4이닝 4피안타 4볼넷 4탈삼진 3실실점에 그쳤다. 광속의 직구와 변화구를 구사하고도 타자를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제구다. 이날 문동주는 총 86구를 던졌는데, 그 절반인 43구가 볼이었다. 카운트 싸움에서 타자를 이기지 못하니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갔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이날 경기 전 공격적인 승부를 강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좋은 구위에도 제구가 되지 않은 3회와 5회 위기를 자초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
빠른 변화구 역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가장 말썽을 부리는 건 슬라이더다. 평균 시속 141.5㎞에 달하는데, 피안타율이 0.368다. 구속만 빠를 뿐 타자를 잡아내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역대 최고속' 체인지업 역시 마구와는 거리가 멀다. 올 시즌 피안타율이 0.250으로 평범하다.
변화구가 빠른 게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결국 무브먼트와 제구가 동반돼야 한다. 특히 체인지업은 본질적으로 타이밍을 뺏는 공이다. 직구와 구속 구간이 겹치지 않아야 하는데, 19일 경기처럼 체인지업 최고속이 직구 최저속과 비슷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빨라도 무브먼트가 그만큼 크고, 자유자재로 타자를 낚을 수 있다면 활용 가능하다. 메이저리그(MLB) 당대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제이콥 디그롬(텍사스 레인저스) 역시 주요 무기 중 하나가 고속 체인지업이었다. 대신 큰 각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타자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그 정도 무브먼트를 담보할 수 없다면 고속 체인지업도 마구가 되긴 어렵다.
문동주가 증명한 구속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재능이다. 전업 투수 경험이 적은 편이기에 성장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유망주'인 그가 '에이스'가 되려면 재능을 결과로 살려내야 한다. 19일 경기가 그에게 다시 한번 숙제를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