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Monster)은 소년들의 미묘한 감정, 가족과의 관계, 학교에서 친구들과 교사 간의 갈등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돼 있는 ‘괴물성’을 다각도로 탐구하는 이야기다. 그동안 소외된 계층을 중심으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해오던 고레에다 감독의 세계가 조금 변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미나토가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어머니 사오리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 원인이 아이의 선생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사오리는 학교를 찾아가 정황을 파악하려고 한다.
‘괴물’은 어머니인 사오리의 관점과 선생님 효리의 관점, 그리고 미나토의 관점에서 전개되면서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구조이다. 동일한 사건이 관점이 바뀌면서 두세 차례 반복되기 때문에 진실은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된다는 주제를 구현한 일본 고전 영화 ‘라쇼몽’과 비슷하다.
칸을 찾은 고레에다 감독은 유사한 세계를 탐구해 왔던, 자신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해 마지 않던 사카모토 유지의 시나리오로 ‘괴물’ 작업을 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데뷔작 ‘환상의 빛’을 제외하곤 모두 자신이 시나리오를 썼지만, ‘괴물’은 사카모토 유지와 협업해 작업했다. 사카모토 유지는 ‘도쿄 러브스토리’ 같은 로맨스물 뿐 아니라 ‘마더’ 같은 사회물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집필한 일본 대표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이다. 일본에선 고레에다 감독과 사카모토 작가가 ‘괴물’로 협업한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또한 ‘괴물’은 지난 3월 타계한 세계적인 음악감독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이란 점도 주목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늘 협업하고 싶었던 고 사카모토 류이치와 같이 할 수 있게 돼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지난 19일 오후 프랑스 칸에서 진행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외신 인터뷰에 한국언론으로는 유일하게 필자가 참여해 ‘괴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과 달리 ‘괴물’은 사카모토 유지의 시나리오를 연출했는데.
사카모토 유지에게서 처음 제안 받고 3년 동안 다양한 해석과 연출에 대해 논의했다. 이전에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협업하는 작업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실제 촬영에 들어갈 때는 스스로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도가 높여졌다고 느꼈다.
소박했던 본인의 유년기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요즘 육아는 더 어려워졌다고 느끼는가.
대중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면 안된다는 강박 관념은 늘 일본 사회에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이 관념은 어른 세계에 팽배하며 어린이들의 세계로도 흘러 넘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런 현상은 내 유년기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요즘은 어린 아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여 기른다고 생각한다. 한때 어른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어린이들만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어린 아이로 산다는 게 더 숨막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어른들이 더 밀착해서 신경 써주니까. 물론 어른들도 걱정되는 마음에 그러는 것이다. 다만 제 유년기에는 그러지 않았다. 한 가정에 자녀 세 명이 있었으면 한 명 정도는 유별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가정에는 자녀가 없거나 있어도 한 명 정도다. 그만큼 부모나 어른들이 더 신경을 많이 쓴다. 이 부분은 제 유년기와 상당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환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언급한다. 감독님께서는 환생을 하게 된다면 무엇으로 환생하고 싶은가?
(웃음 뒤 진지한 고민) 고래로 환생하고 싶다.
감독님도 유년기 시절에 영화에서 나오는 기차처럼 본인만의 공간, 아지트가 있었는지.
있었다. 집 옆에 들판이 있었는데, 나중에 누가 땅을 구매해서 폐차장을 세웠다. 낡은 차들이 수십 대가 놓여있었다. 저희 가족은 자가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드는 차를 하나 골랐다. 차 문도 잠겨지지 않았다. 조수석 수납함을 비롯해 여러 잡동사니가 그대로 남아있는 차였다. 나는 거기에 내 소중한 물품들을 가져가 내 공간으로 꾸몄다. 그런 면에서 작품 속에서 두 아이가 기차 칸을 꾸미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 제 유년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차에는 가솔린 냄새가 여전히 풍겼다. 당시 나에게 그 휘발유 냄새는 어른의 세계의 냄새로 느껴졌다.
그러면 어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장 아꼈던 보물은 그 기차인가?
부끄럽지만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물품은 어렸을 때 소유했던 테디 베어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둘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른들에게 숨기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 이런 부분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나는 아이들이 딱히 둘 사이의 일을 어른들에게 숨기려고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어른들이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거짓말을 그대로 믿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엄마는 선생님이 괴롭힌다는 아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학교는 실제 정황을 조사하기도 전에 사과부터 한다.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이 진실을 외면하면서 괴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런 괴물들을 탄생시키는 어른들에게 둘러 쌓인 아이들은 스스로에게서도 괴물을 발견하게 된다. 실존하지 않는 괴물들인데 말이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이런 괴물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가장 중요한 건 결말이다. 결국 어른들이 빚어낸 거짓과 갈등의 세계로부터 아이들이 탈출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어루만진다. 일본에서는 두 소년이 그렇게 친밀한 게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주인공인 소년은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빠처럼 보통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부담을 주고, 선생님은 소년은 남자다워야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어른들의 말들과 가치관에서 소년은 부담을 느끼고, 그렇게 본인이 스스로를 정상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나는 일본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말에 도달할 때 주인공은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안타깝게도 이 꺠달음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또한 극 중 또 다른 소년 요리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 동성애가 “고쳐야 되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괴물’이라는 제목이 모든 인간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상징하는가?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으며, 이로 인해 모든 인간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싶은 건가?
실제로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인간들이 있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 발언, 행동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점점 커질 때,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시작할 때,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때 괴물이 점점 성장한다. 그리고 그게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두 소년과 촬영하는 건 어땠는가? 그동안 어린 연기자들과 일하는 게 어떻게 변해왔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저는 어린 연기자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는다. 장면마다 세트에서 대사를 제공한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그런 식으로 작업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배우를 중심으로 대사를 짜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성격과 감수성에 따라 대사를 지시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이 실제 본인과 유사할 수 있게 신경쓴다. 이번 작품의 경우 주인공들이 느끼는 내적 갈등과 부담 때문에 그런 지도를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배우들이 대사를 읊어야 했고, 대사를 중심으로 리허설도 하고 사전 준비를 함께 했다. 평소와는 다른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막상 세트 현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우들에게 따로 과제를 내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 않았다. 최대한 배우들이 연기함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계속 연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