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현장에서 선수와 심판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양쪽 모두 야구팬 눈치를 봐야 할 때다.
지난 23일 열린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전 4회 초. KIA 타자 황대인은 한화 투수 리카르도 산체스와의 승부에서 불리한 볼카운트(1볼-2스트라이크)에 놓였고, 4구째 몸쪽(우타자 기준) 포심 패스트볼(직구)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공은 스트라이크존(S존)을 명백히 벗어났다.
이영재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나오자, 황대인은 잡고 있던 배트를 지면에 떨궜다. 집어던진 건 아니다. 이후 배트를 그대로 놓아둔 채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무언의 항의였다. 이영재 심판은 황대인의 이름을 몇 차례 부르며 ‘배트를 가져가라’고 경고했다. 선수가 말을 듣지 않자, 결국 퇴장 명령을 내렸다. 황대인은 2회 초 첫 타석에서도 같은 코스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너무 넓은 이영재 심판의 몸쪽 공 S존에 쌓인 불만을 표출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영재 심판은 28년 차 베테랑이다. 2017년 KBO가 선정한 심판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력을 갖춘 심판이기에 이날(23일) 퇴장 명령은 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심판의 오심과 권위적인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일 잠실 LG 트윈스-한화 이글스전을 이끈 심판진은 명백한 ‘수비 방해’ 상황을 ‘타격 방해’로 결론냈다. 경기 뒤 KBO가 이를 정정했다.
이 경기 12회에는 권영철 심판과 LG 선수 박해민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심판은 공 판정을 두고 헬멧을 던지며 분노를 표출한 박해민에게 '야, 나도 고생해'라고 소리쳤고, 선수도 '누가 안 고생한다고 했느냐'라고 받아치며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야구팬은 '심판이 경기를 지배한다'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고압적인 태도로 반말을 하는 모습에 불쾌감을 드러낸 이들도 많다. '나도 고생해'라는 권영철 심판의 토로는 밈(meme·인터넷에서 입소문을 타며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으로 번지며 조롱을 당하고 있다.
황대인을 향한 이영재 심판의 퇴장 결단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숲을 보지 못했다.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경기 운영 능력이나 S존 정확성에 자부심을 가질 순 있다. 하지만 심판진을 향한 선수들과 야구팬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먼저 헤아려야 했다.
원칙을 고수하고, 예외 없이 적용하는 것만이 심판의 권위를 잃지 않는 길이라고 여겼을까. 분명한 건 이영재 심판은 경고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던 상황에서 석연치 않은 결단(퇴장)을 내려 논란을 자초했다. 최근 벌어진 다른 심판들의 오심과 태도 문제도 다시 거론되게 만들었다.
항상 심판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LG 내야수 오지환은 지난달 29일 잠실 KIA전에서 삼진을 당한 뒤 함지웅 심판의 공 판정에 격분하며 배트를 두 번이나 지면에 내리쳐 조각냈다. 남은 손잡이도 집어던졌다. 당시 잠실 구장은 만원 관중이었다
오지환은 너무 폭력적인 모습으로 분풀이를 했다. 당시 심판진은 오지환을 퇴장시키지 않았다. 허운 KBO 심판위원장은 이튿날 "퇴장 조치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생각을 뒤늦게 전했다.
몇몇 선수도 알게 모르게 심판을 자극하고 있다. 큰 틀에서는 아구계 선·후배 사이지만, 동업자 정신을 공유하긴 어려워 보인다. 심판에게 항상 매끄러운 운영을 바랄 순 없다. 오심에 당한 선수가 매번 화를 삭일 수도 없다. 야구팬이 이런 갈등이 표출되는 장면을 봐야 할 이유도 없다.
최소한 선수와 심판 모두 자신의 언행을 야구팬이 지켜보고 있고, 그게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가져야 한다. 리그에 흐르는 기류나 서로의 상황 의식 없이 '무관중 게임'을 하는게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