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지난 3월 30일 열린 대한항공과의 V리그 챔피언결정전(챔프전) 1차전에서 평소보다 강한 승부욕을 드러냈다. 심판 판정에 수차례 불만을 어필했고, 상대 벤치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도 보였다.
현대캐피탈은 1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1-3으로 졌다. 경기 뒤 최태웅 감독은 “외국인 감독(토미 틸리카이넨)에게 3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내주는 건 국내 지도자로서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외국인 감독이 (V리그에) 또 들어온다. 국내 감독들이 이전과 똑같이 하면 안 될 것”이라고 승부욕을 감추지 못한 배경을 전했다.
대한항공은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을 선임해 치른 2020~21시즌과 틸리카이넨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2021~22시즌 통합 우승을 연달아 차지했다.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통합 3연패를 노리고 있었다.
이날 최태웅 감독이 전한 속내를 통해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캐피탈의 챔프전 우승 2회, 정규리그 1위 2회를 이끌며 ‘국내파’ 대표 지도자로 인정 받는 최태웅 감독조차 외국인 감독의 역량과 리그에 미치는 영향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석진욱 감독과 계약 기간이 끝나며 새 사령탑을 찾고 있던 유일한 팀인 OK금융그룹이 외국인을 선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최태웅 감독은 결국 외국인 사령탑이 이끄는 대한항공의 3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막지 못했다. 챔프전 1~3차전을 모두 졌다. 또 최 감독 말대로 OK금융그룹은 외국인 감독과 손을 잡았다. 일본 리그 산토리 선버즈에서 6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일본인 오기노 마시지를 지난달 29일 팀 3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이제 V리그에 외국인 사령탑은 역대 최다인 4명이다.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과 오기노 OK금융그룹 신임 감독, 그리고 여자부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과 아헨 킴 페퍼저축은행 감독 등이다.
외국인 감독은 세계 배구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이를 팀 상황에 맞게 구현하는 능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연·지연을 의식하지 않고 ‘제로 베이스’에서 선수를 평가하고 기용해 최상의 전력을 가동한다는 점도 강점이다.
아본단자 감독은 터키·이탈리아 리그에서도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아헨 킴 감독은 약체였던 브라운 대학교를 창단 최초로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디비전Ⅰ 토너먼트에 진출 시킨 이력이 있다. 선수 시절 ‘수비형’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였던 오기노 감독은 탄탄한 수비력과 기본기를 강조하는 팀을 만들 전망이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이미 2시즌 연속 우승을 이끈 성과가 모든 걸 말한다. 틀에 박히지 않은 창의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는 특유의 지도 방침이 돋보인다.
남녀부 각각 2명으로 늘어난 외국인 사령탑.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 드러난 최태웅 감독의 승부욕을 보면, 다른 지도자들도 이런 추세를 의식할 것 같다. 배구팬에겐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 자존심 대결도 경기를 즐기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오는 7~8월 구미에서 열리는 KOVO컵은 그 서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