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린 ‘뚝섬배’와 ‘SBS스포츠 스프린트’ 대상경주에서 경주마 라온더파이터와 임기원 기수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임 기수는 한국경마 역사상 하루에 두 번 대상경주를 연달아 우승한 최초의 기수가 됐다.
34세에 기수로 데뷔해 40대 중반에 접어든 임기원 기수는 하루 2회 대상경주 연승에 이어 개인 통산 400승까지 한달음에 돌파했다. 임 기수의 올해 승률은 무려 20.7%. 하지만 그가 최고의 날을 맞이하기까지 좌절과 기다림이 많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축구선수→기수후보생→마필관리사→34세 늦깎이 데뷔
학창 시절 프로 축구 선수를 꿈꿔왔던 임기원 기수는 작은 체격 탓에 꿈을 접었다. 중학생 시절 키가 160㎝대에서 멈추며 또래들과 체격 차이가 벌어졌다. 대학 진학 후에도 성장이 이뤄지지 않아 프로선수의 꿈은 멀어져 갔다.
이때 고교 은사가 그에게 건넨 것이 기수후보생 모집 포스터였다. 임 기수는 “경마는커녕 말도 한번 본 적이 없었지만, 박태종 기수가 그려진 포스터 하나만 보고 시험에 응했다. 시험 당시 처음 경주마를 봤는데 눈이 공룡처럼 커서 압도되는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임기원 기수는 1999년 기수후보생으로 당당히 합격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후보생 졸업을 마치지 못해 기수의 꿈도 곧 접어야 했다.
이후 임기원 기수는 조교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마필관리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2011년 기수후보생이 아닌 기능능력을 갖춘 외부인도 수습기수에 도전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기자, 조교사 전 단계인 조교보 자격시험을 포기하고 수습기수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합격.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마필관리사 출신 기수라는 꼬리표와 경마장의 텃세로 임기원 기수는 경주로에 데뷔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인내해야만 했다.
▶마필관리사 경험이 장점으로, '악벽마' 청담도끼와 함께 스타덤
늦깎이 신입 임기원 기수는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데뷔 8개월 만에 34승을 거둔 임 기수의 월 승률은 무려 15%나 됐다. 낙마사고로 쇄골이 골절되는 부상으로 상승세가 잠시 꺾이기도 했지만, 데뷔 해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10년간의 마필관리사 경험은 특장점이 됐다. 오랜 경험으로 말 다루는 데 도가 튼 임기원 기수에겐 특히 성질 나쁜 악벽마를 부탁하는 마주와 조교사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임기원 기수는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청담도끼’를 만났다. 대상경주 9회 우승, 수득 상금 30억, 깨지지 않는 2000m 최고기록의 주인공 ‘청담도끼’는 능력보다 고쳐지지 않는 악벽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임 기수는 성질 나쁜 ‘청담도끼’를 담당하며 2018년에만 4개의 대상경주를 석권, 생애 최초로 연도 최우수 기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꾸준한 노력으로, 신뢰받는 기수로 오래 남는 것이 목표"
지난해 9월 임기원 기수는 낙마로 인한 늑골과 척추 골절이라는 시련을 마주했다. 그래도 덤덤했다. 임 기수는 “부상기간 쉼표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지난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했다”며 “이제 성적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꾸준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선보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 2월 경주로에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한 임기원 기수는 이젠 자신와 말의 컨디션을 고려해 출전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 출전 횟수는 줄어든 대신 승률은 본인의 최고점을 달리고 있다. 그는 “인기마를 타고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을 뿐, 특별히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며 “김귀배, 박태종 선배들처럼 꾸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팬들에게 오래토록 신뢰받는 기수로 남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며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