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차정숙’ 결말은 너무 만족해요. 처음부터 정숙의 성장으로 시청자에게 어필한 거니까요. 물론 잘못한 인물에게 단죄를 내리는 걸 바라셨겠지만, 그랬다면 다른 드라마와 똑같아지지 않았을까요?”
2023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를 뽑으라면 아마도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언급될 것이다. 1화에서 4.9% 시청률로 시작해 지난 4일 18.5%로 종영한 ‘닥터 차정숙’은 JTBC 역대 시청률 4위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했다. 넷플릭스에서도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등 10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한 ‘닥터 차정숙’은 방영 기간 동안 많은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닥터 차정숙’의 김대진 PD는 “이런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배우들이 행복해하니 그 점이 가장 좋다”면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닥터 차정숙’이 큰 기대작은 아니었어요. 엔터 업계 상황이 워낙 좋지 않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작품도 아니었으니까요. 소위 말하는 ‘거대 캐스팅’도 없었고요. 그렇지만 스토리가 편하게 읽히고,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돼 이런 결과를 얻은 게 아닐까 해요.”
‘닥터 차정숙’은 20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던 차정숙(엄정화)이 46세의 나이에 과거 꿈이었던 의사에 다시 도전하는 ‘인생 봉합기’를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남편 서인호(김병철)와 대학시절 동기였던 최승희(명세빈)의 불륜을 알게 되고 병세까지 악화되는 등 갖은 수난을 겪는다. 하지만 김PD는 ‘닥터 차정숙’이 흔한 불륜 드라마로 남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며 “아무리 세게 해도 ‘부부의 세계’를 넘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당연히 자극적인 방향으로 갈수록 시청률이 따라온다는 걸 알고 있죠. 하지만 제작진 모두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불륜’은 정숙이 넘어야 할 장애물 중 하나일 뿐, 드라마는 정숙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으니까요.”
하지만 정숙에게 시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주치의이자 같은 병원 동료인 로이킴(민우혁)이 ‘서브남’으로 제대로 활약하기 때문이다. 로이는 언제나 정숙의 곁에 머물며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보기만 해도 설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해피엔딩을 바라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로이는 다른 여성을 만나고 정숙과는 동료로 남게 된다. 김 PD 또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알고 있다며 “저도 작가님에게 마지막 부분을 바꾸자고 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시청자분들은 배신감이 들 거예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30대 남성이 아줌마만 바라보는 게 말이 될까?라는 얘기가 나왔죠. 처음부터 정숙의 옆에 키다리 아저씨를 세워두되, 두 사람이 이어지니 않는다는 장치였으니까요. 섭섭해도 어쩔 수 없죠.”
‘닥터 차정숙’이 순항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7화에서는 한 크론병에 걸린 환자가 장인에게 ‘못된 병’, ‘나쁜 병’ 등의 모진 말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크론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PD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했다.
“저희의 의도는 그저 딸을 키우는 장인이 남자친구를 향해 감정적인 말을 쏟아냈다는 의도였어요. 대본 어딘가에 ‘막말’이었다는 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저희가 미흡했죠. 당연히 시청자분들이 마음 아파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 PD는 ‘닥터 차정숙’의 성공을 단순히 수치적인 면으로만 판단하지 않았다. 인기 장르가 아니었음에도 화제성을 유발했다는 점, 무엇보다 “연기 구멍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모든 배우들이 골고루 주목받았다는 것이 김 PD가 가장 의미를 둔 지점이었다. 그는 “숫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었다”며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다’고 말해주니 그거면 됐다. 시청률 그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엄정화 씨와 명세빈 씨 모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시기가 있었어요. 많은 작품을 한 김병철 씨도 주연으로서 제대로 알리게 됐죠. 이 외에 송지호, 조아람, 이서연, 소아린 배우 모두 관심을 받게 됐어요. ‘닥터 차정숙’은 그야말로 가성비 좋았던 드라마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