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내가 문제라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
김의철 KBS 사장이 정부의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반대하며, 사장직을 내걸었다. 수신료 분리징수에 사활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는 KBS 입장을 드러낸 것이긴 하지만 문제는 전임 정부를 소환하며, 수신료 사안에 정치적 이해 프레임을 씌운 데 있다. 정치적 독립성을 우선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수장이 수신료 사안을 자신의 자리 운운하며 ‘정쟁의 도구’로 삼은 격이다.
최근 정부는 20여 년간 시행된 수신료 징수 방식을 수술대에 올렸다. 1994년부터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과 함께 사실상 강제 징수한 수신료에 대해 분리징수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권고한 것. 최근 한 달간 진행한 국민참여토론에서 95%(전체 5만8251표 중 5만6226표)가 현행 방식 개선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근거로 들었다. 이같은 정부 방침에 김의철 사장은 “공영방송의 근간인 수신료 재원을 흔들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공적 책무를 수행하지 못할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를 막는 것이 KBS 사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공영 방송이 위기’라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런데 김의철 사장의 ‘위기’와 국민이 말하는 ‘위기’는 다른 듯하다. 지난 3월 팩트체크 전문매체인 트루스가디언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이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의견을 냈다. 이들 중 70% 이상은 ‘수신료를 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비단 최근 여론조사 결과만이 아니라 공영방송 KBS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 바꿔 말하면 국민이 KBS에 수신료를 내는 것에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해 국민은 ‘위기’라 느끼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의철 사장은 이런 국민의 목소리는 뒷전인 듯하다. 분리징수 사안을 신구 정권 간의 갈등 문제로 규정하며, ‘정치적 프레임’으로 바꿔치기 하려 했다. 물론 그간 수신료 징수 방안에 정권과 정치적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국민참여토론에 현 정권에 우호적인 단체들이 대거 투표를 독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에서 자신들 입맛에 따라 입장을 달리한다 해도, 독립성과 공정성을 우선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사장이 앞장 서서 수신료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연결 짓는 것은 다른 문제다. 더구나 나날이 커져가는 KBS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무시한 채 말이다.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은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한다. KBS는 그동안 보도 공정성과 중립성을 의심 받아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됐다. 드라마, 예능 등 콘텐츠의 질적 하락에 대한 지적도 있어왔다. 공영방송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거론될 때마다 KBS는 고개를 숙였으나, 추락한 국민의 신뢰를 끌어올리는 데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수신료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올릴 게 아니라, 반성과 성찰이 먼저다.
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