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지식인들이 '인구 절벽'을 마주한 우리나라에 뼈아픈 일침을 날렸다. 경제 순위 하락을 넘어 국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단순히 출산율을 끌어올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교육·국방·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정책적인 변화를 줘야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출산·육아 지원은 물론 교육 개혁과 지방 불균형 해소 등에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내용은 21일과 22일 양일간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서 나왔다.
“인구절벽, 더는 미래세대 몫으로 남겨선 안돼”
이번 이데일리 전략포럼은 ‘인구절벽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로’라는 주제로 열렸다. 국내외 지식인들이 한국의 인구 절벽 원인과 해법을 공유했다.
곽재선 이데일리·KG그룹 회장은 개회사에서 "인구 감소의 책임을 더는 미래 세대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며 "개인과 함께 정부, 민간기업의 노력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해외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서면 축사에서 "인구 절벽은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과제"라며 "무엇보다 우리 사회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과 자아실현의 목표가 동시에 충족되고, 지나치고 과도한 경쟁이 아닌 행복을 키워줄 수 있는 문화로 바뀌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정부는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국의 인구 경쟁력은 젊은 세대의 결혼 기피와 높은 육아 비용,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트렌드 확산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이 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인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지금의 상태라면 한국이 2750년에 소멸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경고를 했다.
남녀 가사·육아 부담 동등하게
미국 대표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제이컵 펑크 키르케고르 선임연구원도 이에 공감하면서 성차별을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이번 포럼 기조연설에 나선 그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는 여성에게 가사와 육아의 대부분을 도맡을 것을 요구한다"며 "결혼이 '나쁜 거래'라고 여기게 한다. 여성에게 불리한 보수적·사회적 규범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높은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에 결혼과 출산이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키르케고르 연구원은 한국이 합계출산율을 1 이상으로 올리지 않으면 1990년대 일본의 경제 불황보다 힘든 시기를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정서·정책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먼저 한국 가정 내 남성과 여성이 고르게 가사·육아를 분담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 후 여성들의 복직을 보장하고, 남성들의 육아 휴직도 확산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유럽에서 늘어나고 있는 비혼 출산 지원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프랑스의 경우 가족 수당과 무상 보육·교육 등을 결혼 여부나 가정의 형태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뒷받침한다.
키르케고르 연구원은 "혼외 출산은 부모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만 가질 뿐"이라며 "'결혼의 압박'에서 벗어나 젊은 한국인 커플들의 비혼 출산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외국인 비중이 2.4%인데, 독일·스페인·벨기에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10%가 넘는다. 캐나다는 지난해 인구가 100만명 증가했는데, 이 중 이민자는 96%에 달했다.
키르케고르 연구원은 "매년 노동 연령에 해당하는 이민자를 40만명씩 유입해야 노동 연령 인구의 급감을 피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한국의 노동 연령 인구 중 절반이 2060년대 중반까지 이민자로 채워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에서 삼성 가야' 인식 벗어야
두 번째 기조연설을 맡은 조영태 서울대학교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한국의 지나친 경쟁 분위기가 출산율 급감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봤다. 자녀가 수도권에서 공부해 명문대에 진학한 뒤 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조영태 센터장은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떨어져 경쟁이 줄어야 하는데 똑같은 경쟁심을 느끼며 자라고 있다"며 "지방에 더 노출하고 해외 경험을 쌓아 사고를 넓혀야 '서울에서 삼성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시급한 개혁 과제는 연금을 꼽았다. 내는 기간은 늘리고 수령 시기는 늦춰야 정부가 2055년으로 예측한 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놨다. 앞으로 10년간 부산시 인구만큼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정년 연장 이슈로 눈길이 쏠린다.
조영태 센터장은 "2030년이 정년 연장을 시작하기 적합한 시점"이라며 "그 때가 되면 청년들은 장년 세대가 은퇴하는 것보다 계속 일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경제를 활성화해 수도권 과열 현상을 완화하면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지금까지의 남성 중심 노동집약적 산업 대신 여성 친화적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고 짚었다.
조영태 센터장은 "여성이 늘면 문화가 다채로워지고 서비스 산업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전 도시의 성장 공식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