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야구는 기록의 경기"라는 말을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의 힘을 빌려 과거엔 상상하지 못했던 숫자들이 경기마다 쏟아져 나온다. 타구 스피드(Exit Velocity)와 발사각(Launch Angle)도 그중 하나인데 두 기록은 기대 타율(wBA) 기대 장타율(xSLG) 가중 출루율(wOBA) 등을 비롯한 또 다른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타구 스피드와 발사각은 기대 타율이나 기대 장타율 등을 산출하는 근거가 된다. 타격 후 어느 정도 타구 스피드와 발사각이 나오면 과거의 관찰 가능한 모든 타구를 활용해 확률이 도출된다. 예를 들어 외야 우중간 코스에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를 쳤을 때 이 정도의 타구 스피드와 발사각이 과거 80% 정도 안타가 됐다면 기대 타율은 8할이 되는 거다. 만약 이 타구를 잡는다면 그 외야수는 엄청난 호수비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관건은 이런 기록 역시 '확률'이라는 점이다. 2021년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에게 밀려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투표 2위에 오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일찌감치 아버지를 능가할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2021년 48개였던 홈런이 지난해 32개로 줄었다.
올 시즌 페이스(70경기, 9홈런)는 더욱 더디다. 2년 전 0.601이던 장타율이 4할대 초중반에 머문다. 발사각의 급상승, 하드 콘택트로 불리는 강한 타구 생산력이 뛰어난 선수지만 기대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다. 토론토 홈구장 로저스 센터가 올 시즌을 앞두고 펜스까지 앞당겨 홈런이 대폭발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실은 어떨까. 정작 홈구장에선 단 하나의 홈런도 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이다.
바비 위트 주니어(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상황도 비슷하다. 위트 주니어의 19일(한국시간) 기준 성적은 70경기 타율 0.244(287타수 70안타) 11홈런 35타점이다. 출루율(0.283)과 장타율(0.422)을 합한 OPS가 0.704에 그친다.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해 30홈런-30도루 클럽에 쉽게 가입할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숫자에 근거한 기대 성적과 실제는 큰 차이가 있다. 위트 주니어는 타석당 기대 득점과 실제 기록의 간극이 꽤 벌어져 있는 선수 중 하나다.
투수도 예외가 아니다. 2021년 데뷔한 라이드 데트머스(에인절스)는 초특급 유망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0순위에 지명, 계약금만 467만 달러(60억원)를 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 그의 평균자책점은 4점대 중후반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세부 기록을 들여다보면 데트머스의 고전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데트머스의 공을 타자들이 스위트 스폿(발사각 8~32도)에 맞힐 확률은 13.3%다. 이는 리그 상위 톱10 수준이다. 스위스 스폿에 맞힐 확률이 떨어지면 기대 타율이나 기대 장타율이 높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98마일(157.7㎞/h) 이상 강습 타구 허용률도 상위 15%에 해당한다.
다만 인플레이 타구의 안타 확률을 의미하는 BABIP가 0.377로 높은 편이다. 기록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단순히 운이 나쁜 경우라고 해석한다. 에인절스의 수비 수치가 리그 상위 10위권 내임을 고려하면 데트머스의 올 시즌 평범한 성적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다. 그렇다고 예상 기록과 실제 결과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 격차가 큰 경우도 꽤 있다. 정보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선수와 구단, 팬들도 '기록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