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자(CEO)가 한국을 찾아 지난 22일 K콘텐츠의 힘과 영향력, 앞으로의 협력 관계에 관해 한껏 강조하고 갔지만 어쩐지 뒷맛이 씁쓸하다. 그는 수년간 3조원을 K콘텐츠에 투자하겠다며 자랑했지만 정작 재주는 한국제작사가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먹는 현실과 망사용료, 계정 공유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좋은 일은 즐거이 이야기 하다가도 부정적 이슈에 관해선 말을 아끼거나 늑장대응을 하는 것이 넷플릭스의 기조로 보인다.
최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콘텐츠에서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로 표기한 자막이 등장했다며 넷플릭스 측에 시정을 요구했다. 파오차이는 중국 쓰촨성 지역 채소 절임 음식으로 일부 중국인들은 김치의 원조가 파오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을 개정하면서 김치의 올바른 중국어 표기를 ‘파오차이’가 아닌 ‘신치’(辛奇)로 명시했다.
넷플릭스 측의 입장은 “서 교수가 보냈다는 메일을 내부에서 수신했는지, 어떤 콘텐츠로 문의를 한 것인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 그 외에 내용이 확인되면 어떻게 조치하겠다거나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겠다는 등의 언급은 없었다. 넷플릭스 측은 앞서 지난 2021년에도 오리지널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한 자막을 삽입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시지프스’를 서비스하면서도 적절하지 못한 자막을 썼다. 한 캐릭터가 “동해바다, 서해바다 할 때 서해?”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를 “중국에 뿌리를 둔 이름, 맞죠?”(Un nom à racines chinoises, non?)라고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같은 일이 콘텐츠 기업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콘텐츠는 곧 문화이고, 어떤 콘텐츠를 세계 각국에 소개한다는 건 곧 그 나라의 문화를 전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전 세계 192개국에 특정 국가의 작품을 공개할 때는 최대한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고 훼손하지 않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논란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물론 재발 방지 약속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태도는 한국을 그저 효율성 좋은 콘텐츠 제조국 정도로 여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계정 공유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테드 서랜도스 CEO는 22일 진행된 내한 간담회에서 최근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새로운 계정 공유 방식’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이 부분에 대해 현재 알릴 건 없다”고 답했다. 다만 “넷플릭스 계정 공유 방식은 글로벌하게 지속되는 일”이라는 표현에서 한국에서도 곧 계정공유 금지가 시작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가족 외 공유 계정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공식 발표했다. 기존에는 한 명이 결제하면 최대 네 명까지 그 계정을 공유할 수 있었으나 구독자 감소, 실적 악화 등을 겪으며 가족이 아닌 타인과 계정을 공유하는 걸 금지하도록 한 것. 이 같은 정책은 일부 남미 국가서 시범 실시됐고 지난달에는 미국에서도 시작됐다. 한 계정이 복수의 프로필을 만들어 공유하면서 여러 명이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즐기며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건 넷플릭스가 가진 큰 장점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서랜도스 CEO의 침묵은 넷플릭스를 즐기는 국내 구독자들에게 ‘언제 계정공유가 금지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만 안겼다. 한국 콘텐츠는 좋지만 한국에 최선의 예는 다하지 않는 것 같은 넷플릭스. 한국에서 단물만 빼먹으려는 것으로 보이는 건 너무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