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화젯거리인 구종은 스위퍼(Sweeper)이다. 변형 슬라이더 일종인 스위퍼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에서 오타니 쇼헤이가 마이크 트라웃(이상 LA 에인절스)을 헛스윙 삼진 처리한 결정구로 화제가 됐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스위퍼를 하나의 구종으로 인정, 현재 공식적으로 집계까지 한다. MLB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이번 시즌 스위퍼를 던진 빅리그 투수는 136명에 이른다.
스위퍼와 대척점에 있는 구종을 꼽으라면 너클볼(Knuckleball)이다. 지난해 MLB에 공식 집계된 너클볼은 총 19개. 공교롭게도 19개 모두 야수(어니 클레멘트·잭 메이필드·프랭크 슈윈델)가 기록했다. 승부가 크게 기운 상태에서 마운드에 오른 야수들이 쇼맨십 차원에서 던진 게 전부였다.
그런 면에서 지난 25일(한국시간) 매트 월드론(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MLB 데뷔전은 흥미로웠다. 이날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한 월드로의 투수 수 62개 중 13개(21%)가 너클볼이었다. 미국 CBS스포츠는 '월드론이 2021년 미키 자니스(당시 볼티모어 오리올스) 이후 처음으로 빅리그 너클볼러가 됐다'고 전했다. 2021년 스프링캠프에서 동료 투수들과 장난삼아 던진 몇 개의 너클볼이 월드론의 야구 인생을 바꿨다.
미국에선 너클볼의 명맥이 이어졌지만, KBO리그에선 아니다. 2019년 채병용(전 SK 와이번스)이 은퇴한 뒤 자취를 감췄다. 채병용은 2013년 가을 미국 애리조나 교육리그에서 가이 콘티 전 뉴욕 메츠 불펜 코치를 만나 너클볼을 연마했다. 전문 너클볼러는 아니었지만, 투구 레퍼토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무기'로 활용했다. 외국인 투수로 너클볼을 던진 크리스 옥스프링과 라이어 피어밴드(이상 전 KT 위즈)도 비슷했다. 축구의 무회전 킥과 비슷한 너클볼은 회전 없이 날아가면서 공기 저항에 따라 흔들린다. 구속이 느려도 공략이 까다롭다. 생소한 만큼 잘만 구사하면 효과적이다.
너클볼은 어깨나 팔꿈치에도 거의 무리가 가지 않는 구종이만, 프로야구 현장에선 '수요'가 거의 없다. 이유는 뭘까. 너클볼은 손가락 관절(Knuckle)을 구부린 채 손가락의 힘만으로 밀어 던져야 한다. 윤희상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너클볼은 투구 메커니즘이 공을 미는 동작이다. 팔을 휘둘러야 하는 (다른 구종의) 동작과 다르다"며 "너클볼을 구사하려면 (다른 구종과 섞는 게 아니라) 너클볼 위주로만 던지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김경태 LG 트윈스 코치는 "팔 스윙은 똑같은데 (너클볼은) 마지막 단계에서 공을 강하게 민다. 손가락 관절을 구부리는 각도가 중요하고 그만큼 손톱도 강해야 한다. 만약 손톱이 약하면 공에 회전이 걸려버린다"며 "직구나 슬라이더는 공을 눌러줘야 하는데 너클볼은 반대로 손가락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2008년 영상을 찾아보면서 집중적으로 너클볼을 연마했다. 2009년 LG에서 방출당한 뒤 너클볼을 무기로 일본 독립리그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독립리그에서 기록한 너클볼 최고 구속은 114㎞/h였다.
너클볼은 나비가 춤추듯 날아간다고 해서 '버터플라이(나비)'라고 부른다. 관건은 나비를 제어하는 능력이다. 너클볼 궤적에 맞게 투구 자세도 바꿔야 한다. 김경태 코치는 "국내에선 지도자들이 (너클볼을) 선호하지 않는 거 같다. 너클볼을 전문적으로 던지는 투수가 나오면 전담 포수가 있어야 한다"며 "(너클볼은 구속이 느린데) 미국과 다르게 뛰는 야구가 많은 리그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