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더 웃겨서 코미디가 설 자리가 없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사람이 더 무서워 귀신 이야기가 설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한 현실이다. 실제로 신문 사회면을 보면 ‘저게 과연 사람이 한 짓일까’ 싶은 그런 충격적인 사건들을 종종 접한다. 그래서 ‘손 the guest’나 최근 방영되고 있는 ‘악귀’ 같은 오컬트 드라마들은 실제로 귀신이 빙의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정을 내놓기도 했다. 한 마디로 사람이 귀신보다 무서워진 세상이다.
지니TV ‘마당이 있는 집’은 바로 이 사람이 주는 공포를 그린다. 넓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문주란(김태희)은 마당에서 올라오는 악취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린다. 시체가 묻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은 점점 커져 급기야 그 마당을 파보게 되고 마치 의심이 실체가 되어 나타나듯 여성으로 보이는 손이 흙 사이로 비어져 나온다. 도대체 이 평온해 보이고 심지어 답답한 도시의 좁은 아파트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로망마저 느끼게 하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마당이 있는 집’은 이 평화롭게 보이는 공간 이면에 놓여 있는 비밀들을 하나씩 꺼내놓음으로써 시청자들을 그 스릴러의 세계로 인도한다. 문주란이 느끼는 공포는 단란한 가족의 평화가 언제든 깨질 것 같은 위태로움 속에 놓여 있다는 걸 계속 암시하는 데서 생겨난다. 집에서 끔찍한 사체로 발견된 언니를 눈앞에서 봤던 그였다. 그 순간 세상이 깨져버리는 걸 경험했던 문주란은 이 전원주택으로 이사 와서도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편과 아들은 그를 걱정하고, 집에서 난다는 소리와 마당에서 나는 악취가 모두 그의 노이로제에 의한 착각일 뿐이라고 부인한다. 하지만 누르면 누를수록 더 터져 나오려는 압력은 커지기 마련일까. 모두가 자신의 착각이라 여겼던 문주란은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이 불안해했던 이 집의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문주란의 공포가 평화롭게 보였던 가족의 풍경이 모두 깨져버리고, 그들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걸 마주하게 되는 데서 생겨난 거라면, 추상은(임지연)의 공포는 폭력에서 생겨난다.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추상은은 임신한 상황에서도 상습적인 폭행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공포가 임계점에 오르자 추상은 역시 가만히 있지 않는다. 결국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그가 탄 차를 저수지에 밀어 넣어 버리지만, 그것으로 공포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간 한 번도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증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남편이 사라졌다는 해방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한 죄의식이 고개를 든다. 무엇보다 뱃속의 아기가 마음에 걸린다. 아기는 엄마랑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래서 지금 엄마가 어떤지를 다 안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목격자 같은 거네요”라고 말한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살기 위해 남편을 죽인 것이지만, 그는 한 인간을 그것도 아기의 아빠를 죽인 것이기도 하다. 그는 죄가 들통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더불어 죄책감도 느낀다.
문주란과 추상은은 사는 공간처럼 삶 자체가 다르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공포는 닮은 구석이 있다. 그건 은폐된 진실이 밝혀졌을 때 마주하게 될 어떤 파탄의 현실에 대한 공포다. 문주란은 남편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고, 추상은은 자신이 숨긴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디 꾹꾹 눌러 놓는다고 드러날 진실이 숨겨질까. 결국 이들은 모두 그 진실을 마주하고 충격에 빠진다.
오랜만에 보는 스릴러 수작이다. 마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가진 공간 연출에 ‘마더’가 가진 심리묘사가 더해진 듯한 작품이다. 워낙 대본과 연출이 뛰어난 작품이어서인지, 그걸 실감나게 표현해내는 연기자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더 글로리’에 이어 임지연은 한마디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김태희는 전보다 훨씬 깊어진 연기를 꺼내놓았다. 여기에 김성오의 미친 연기력이 더해져 만들어내는 소름 돋는 공포는 이 여름의 더위를 충분히 식혀줄 거라 생각된다. 사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게 실감나는 그 공포를 이들의 신들린 연기가 몇 배는 증폭시켜 놓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