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은성은 지난 15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나눔 올스타 3번 타자·1루수로 선발 출전, 만루 홈런을 포함해 3타수 2안타 5타점 2득점으로 활약했다. 올스타전 만루포는 1982년 원년 올스타전 김용희(당시 롯데 자이언츠) 이후 41년 만에 나온 기록이다. 채은성의 그랜드 슬램에 힘입은 나눔 올스타는 8-4로 승리했고, 채은성은 기자단 투표 61표 중 56표를 받아 김용희처럼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말 그대로 '별 중의 별'이다. 채은성은 이미 14일 열린 홈런 레이스에서도 5개를 넘겨 1위를 차지했다. 홈런 레이스 우승에 이어 올스타전 MVP까지 수상한 KBO리그 최초의 선수가 됐다. 올스타전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난 채은성은 "얼떨떨하다. 여기 있어도 되나 싶다"며 "올스타전에 오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미스터 올스타(MVP)'라니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최초가 하나 더 있다. 역사상 첫 육성선수(연습생) 출신 MVP로 남게 됐다. 순천 효천고를 졸업한 채은성은 지난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8개 팀 어디에도 선택받지 못했다. 육성선수로 LG에 입단한 그는 이듬해 곧바로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 전역 후 친정팀으로 돌아왔고, 2014년 퓨처스(2군)리그 타율 0.403 맹타를 친 끝에 감격의 1군행을 이뤘다. 콜업된 5월 27일 4회 말 삼성 라이온즈 배영수(현 롯데 퓨처스 총괄 코치)로부터 데뷔 첫 안타를 쳤다. 양상문 당시 LG 감독이 기념구에 써준 문구가 '大(대) 선수가 되세요'였다.
이후 채은성은 줄곧 1군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스타 군단' LG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다. 1군에 올라왔을 때 양상문 감독이 주도한 세대교체의 핵심 멤버였지만, 팀의 기둥은 이병규, 박용택 등 고참들이었다. 2018년엔 자유계약선수(FA)로 온 김현수가 선수단 중심이 됐다. 팀 내 입지도 공·수 핵심인 오지환이 더 높았다. 채은성은 지난해 팀의 필요에 따라 외야수보다 시장 가치가 낮은 1루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준수한 성적표를 받았어도 채은성은 언제나 LG의 두 번째, 세 번째 타자였다.
간판타자가 아닌 채은성을 지난겨울 한화가 6년 90억원에 FA 영입했다. 당연히 오버 페이 논란이 따랐다. 선수단 중심이 무너진 한화로서는 위기 때 대들보로 버텨줄 타자가 필요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는 타자에게 6년 동안 거액을 지불한 건 그래서였다.
채은성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개인 성적만 놓고 보면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전반기 74경기에서 타율 0.291 11홈런 47타점 46득점, 출루율(0.370)과 장타율(0.450)을 합친 OPS는 0.820을 기록했다. 그러나 투고타저 리그와 구장 환경 변화까지 고려한 wRC+는 130.2(100이 리그 평균. 스포츠투아이 기준)다. 지난해(122.7)보다 올랐다.
이제 양상문 전 감독의 응원처럼 채은성을 '대 선수'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현재 한화의 최고 타자는 노시환(타율 0.317 19홈런)이지만, 그의 성장에 채은성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채은성은 팀이 최하위로 추락했던 4~5월 타선의 중심에서 고군분투했다. 스프링캠프부터 트레이닝 파트너를 자처했고, 타선에서는 노시환이 집중 견제에 당하지 않게 도왔다. 젊은 타자들이 매 타석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모범을 보인 것도 채은성이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팀에서 가장 타격 기술이 좋다"고 할 정도로 채은성을 신뢰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우산효과(강한 타자 앞뒤 타순의 타자들이 누리는 반사이익)'가 노시환과 외국인 타자들에게 간다고 믿는다. 채은성의 팀 내 비중과 기여도가 크다고 인정받는 이유다.
한화는 전반기를 34승 4무 40패(승률 0.459) 8위로 마쳤다. 지난해(승률 0.324)보다 무려 0.135가 올라갔다. 그 동력은 외국인 투수 2명과 노시환의 성공이다. 그러나 한화는 시즌 초 두 달 넘게 성장통을 겪었다. 그동안 채은성이 대들보가 돼 버텼다. 처음에 낯설게만 들렸던 한화의 '이기는 야구'가 이제 어색하지 않게 됐다. 그걸 상징하는 이가 '미스터 올스타' 채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