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이 지나갑니다. 절기로 입추가 지나 가을이 예고됐습니다. 야구의 시즌은 순위 결정을 향해 클라이맥스를 준비합니다. 예년과 다른 무더위처럼 야구의 가을도 예년과 다를 듯합니다. 촘촘히 위아래 밀착된 순위표를 보면 설렘부터 기대, 불안이 교차하는 팬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팀에서 뛰는 선수부터 스태프의 피 말리고 잠 못 이루는 때가 많아질 듯합니다.
그렇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리셋하고 다음날 각자의 자리를 잡습니다. 팬도 선수도 저마다 리추얼을 하면서 말입니다. 전날 멋지게 이겼다 해도 (그 반대여도) 다음날 차분하게 돌아와야 합니다. 지난해 미국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중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4차전에서 팀이 5-0, 그것도 노히터로 완승을 거둔 다음날입니다. “기뻐할 일이지만 너무 오래 기뻐하면 안 된다. 야구는 매일매일 하는 경기다. 오늘은 새로운 하루다.”
흔히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70대 중반의 백전노장 감독만의 노하우는 아니겠지요. 살다 보니 '슬픔과 기쁨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다는, 어쩌면 하루뿐'이란 걸 야구를 보면서 터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야구에 집중하고 진심을 느끼고 즐기려면 야구 자체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좋건 싫건 결과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저는 경기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판의 역할, 리그의 역할입니다. 그럼 제대로는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정확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정한 진행도 중요하지만 잘못 판단하고 적용하는 걸 양쪽에 고루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공정보다는 정확이 우선입니다.
틀린 판단, 정확하지 않는 진행이 온전히 몰입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비디오 판독이 이뤄지고, 컴퓨터를 이용해 찰나의 순간까지 들여다보는 시대입니다. 눈에 보이는 판정 실수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로 부정확한 판단에 눈 감을 수 없습니다. 심판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선 먼저 정확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비디오 판독 도입 시 심판 권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리플레이 화면을 여러 차례 돌려야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을 놓고 판정이 번복됐다고 심판을 비난하진 않았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줍니다. 이를 보완할 장비와 기술을 도입했기에 더 중요한 가치, 판정의 권위가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포인트 아닐까요. 심판의 권위인가요, 판정의 권위인가요. 리그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야구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심판 이슈가 심상찮습니다. 다가올 가을, 더욱 예민해질 상황을 앞두고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8월 11일 어느 장면이 조용히 넘어가는 듯합니다. 스몰마켓 팀에, 하위권 팀에게 불리한 결과는 이슈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판정의 진실은 남아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그 공’의 궤적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빠졌는지 보입니다. 일각에선 포털에서 쓰는 투구 궤적이 시스템 (PTS)의 한계로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공’이 논란의 블랙홀에 묻힐까요. 야구장에 설치된 트랙맨(trackman) 시스템을 열면 구단에선 공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랙맨 데이터는 각 구단이 공유하기에 다른 팀도 다 볼 수 있습니다. 심판의 실력, 판정의 정확성 여부를 압니다. 누가, 어떻게 틀리는지 압니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스트라이크에 대한 어필이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 감독님이 연이어 항의하고 퇴장당하는 것은 현장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끓어오르는 밑바닥 민심입니다. 의심의 씨앗이 커집니다. ‘저 사람 계속 틀리는데도 또 나오네.’ ‘중요한 순간에 저러네.’ ‘리그 관리는 왜 이럴까….’
‘그 공’은 태풍이 지나간 금요일 밤, 잠실에서 날아간 공입니다. 3-3 동점이던 6회 초 키움 공격, 주자 1,3루 2아웃 풀카운트 상황. LG 함덕주 투수의 여섯 번째 공입니다. 주심 송수근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을 받은 ‘그 공’입니다. ‘그 공’이 어쩌면 논란의 태풍을 부를지도 모릅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