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간다. 국가대표 사이드암스로 정우영(24·LG 트윈스)의 선택은 '과감한 변화'다.
정우영은 지난 14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니다. 엔트리 조정 전 선수와 면담한 염경엽 LG 감독은 "본인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한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슬라이드 스텝(퀵모션)을 빠르게 하면서 투심 패스트볼(투심) 의존도를 낮추는 거다.
사이드암스로는 허리를 숙이는 동작 탓에 도루에 취약하다. 정우영은 지난 시즌 29개의 도루를 허용, 이 부문 KBO리그 1위(2위 한화 김민우·28개)였다. 투구 이닝이 상대적으로 많은 선발 투수들보다 더 많은 도루를 내줬다. 50이닝 이상 소화한 불펜 투수 중에선 2위 장시환(한화·8개)의 3배 이상이었다. 데뷔 첫 홀드왕(35개)에 오르며 개인 타이틀을 손에 거머쥐었지만 만만치 않은 숙제를 확인한 셈이었다.
정우영은 겨우내 슬라이드 스텝을 수정했다. 올 시즌 초반 그 효과를 보는 듯했으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16일까지 12번의 도루를 허용했지만, 잡아낸 건 1번에 그쳤다.
슬라이드 스텝만큼 고민이 큰 건 투구 레퍼토리였다. 정우영은 시속 150㎞를 훌쩍 넘기는 고속 투심을 앞세워 리그 정상급 불펜으로 발돋움했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지난해 정우영의 투심 피안타율은 0.224로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투심의 비율이 91.9%로 높았다. 간간이 커브와 슬라이더를 섞었지만 투심 의존도가 높으니, 타자들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 투심 피안타율이 0.322로 전년 대비 1할 가까이 올랐다. 단조로운 투구 레퍼토리 탓인지 이닝당 투구 수도 16.1개에서 18.1개로 늘었다. 여러 세부 지표에 빨간불이 켜져 선수나 구단이나 고민이 컸다.
염경엽 감독은 "중간이든 선발이든 결정구가 없으면 투구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우영이도 (이닝을) 막긴 막아도 결정구가 없으니 (좋지 않을 때는) 평균 투구 수가 20개를 넘어간다"며 "지난해 투심으로 잘했지만 이제 상대가 그걸 다 안다. 투심이 낮게 오면 괜찮은데 높게 오니까 피안타율이 올라가고, 그러면 평균자책점도 올라간다. 당연히 블론 세이브가 많아진다"고 변화를 당부하기도 했다.
정우영은 지난달 본지와 인터뷰에서 "고집을 버렸다"고 했다. 7월 정우영의 투심 비율은 65.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8월 75.6%로 의존도가 다시 높아졌다. 후반기 9경기 평균자책점이 6.14에 머물자, 퓨처스(2군)리그에서 조정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정우영은 선발 전환과 해외 진출 의사가 강하다. 투심 이외 다른 변화구를 장착하면 그의 야구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공백은 길지 않을 전망. 염경엽 감독은 1군 콜업이 가능한 열흘 뒤 정우영을 바로 콜업할 계획이다.
염경엽 감독은 15일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그동안 준비를 안 한 게 아니다. 작년 마무리 훈련부터 얘기를 해온 건데, 결국 그동안은 본인의 마음이 안 바뀌어서 안 됐을 뿐이다. 본인이 느낀 것만으로 준비가 돼서 돌아올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