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 커브를 앞세워 공백기를 지우고 있다. 커브가 제2의 컷 패스트볼(커터)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류현진은 지난 27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MLB) 클리블랜드 가디언즈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5이닝 동안 4피안타(2피홈런) 3실점(2자책점)을 기록했다. 특유의 완급 조절과 현란한 공 배합이 돋보였다. 토론토는 8-3으로 승리했고, 류현진은 14일 시카고 컵스전부터 3연승을 거뒀다. 시즌 3승 1패, 평균자책점은 2.25다.
류현진은 지난 21일 신시내티전부터 65~66마일(104.6~106.2㎞/h) 느린 커브로 타자들 제압했다. 낙폭은 이전보다 더 컸고, 구속은 느렸다.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 풀타임으로 치른 2021시즌엔 커브 평균 구속이 73.9마일(118.9㎞/h)였지만, 신시내티전에선 68.8마일(110.7㎞/h)이었다.
올 시즌 강속 송구와 주력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엘리 데 라 크루즈가 이 커브에 스윙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각각 범타와 삼진으로 물러난 바 있다.
27일 클리블랜드전도 커브가 빛났다. 1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한 오스카 곤잘레스를 106㎞/h 낮은 커브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124~5㎞/h 체인지업을 보여주고, 더 느린 커브를 던져 타이밍을 빼앗았다.
반대 조합도 통했다. 2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한 가브리엘 아리아스와의 승부에선 6구째 커브를 먼저 보여주고, 비슷한 코스(가운데 낮은)에 체인지업을 넣어 스윙을 유도했다.
4회 초 2사 뒤 상대한 안드레스 히메네즈에겐 초구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바깥쪽(좌타자 기준) 낮은 코스에 커터를 보여주고 더 바깥쪽으로 빠지는 64.6마일(103.9㎞/h) 커브를 구사해 어설픈 스윙을 끌어냈다. 히메네즈가 배트 컨트롤을 해봤지만, 공은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히메네즈의 스윙과 멀어졌다.
MLB 투구 분석 전문가로 알려진 롭 프리드먼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이 장면을 게재하며 “올 시즌 선발 투수가 헛스윙을 유도한 공 중 가장 느린다. 투수 구속은 대체로 ‘얼마나 빠른지’ 확인하지만, 류현진은 얼마나 느린지 보게된다”라고 했다.
류현진은 어깨 수술 재활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2017시즌, 커터를 장착해 체인지업에 버금가는 무기로 만들었다. 2017시즌 17.9%였던 구사율은 2018시즌 24.4%까지 증가하며 포심 패스트볼(직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구사율을 기록한 공이 됐다. MLB 평균자책점 1위(2.32)에 오른 2019시즌은 기존 주 무기 체인지업과 적절히 섞어 구사하며 효과를 배가했다.
다시 한번 1년이 넘는 공백기를 보낸 류현진. 이번에는 달라진 커브로 부상 전과 다른 레퍼토리를 만들고 있다. 2016시즌에도 류현진의 커브는 수평 이동 폭이 70.5인치(179.07㎝)였을 만큼 무브먼트가 컸지만, 당시 평균 구속은 최근 몇 시즌과 큰 차이가 없는 69.7마일(112.2㎞/h)이었다. 하지만 최근 두 경기는 수평 이동 폭은 70.6인치(179.324㎝)로 조금 더 컸고, 구속은 65~68마일 대로 훨씬 느렸다. 더 느려지고, 커진 움직임 탓에 상대 타자는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느린 공은 노림수에 걸리면 장타로 이어진 가능성이 크다. 27일 클리블랜드전에서도 MLB 데뷔 뒤 홈런이 없었던 타일러 프리먼에게 던진 커브가 통타당했다.
류현진의 느린 커브가 주목받게 되면서, 상대 전력 분석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커브가 커터처럼 류현진의 주 무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