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벌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과 관련한 100번째 공판에 출석했다. 4년째 이어지고 있는 1심 공판의 선고가 연내 내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회장의 부당합병 재판은 9월 들어 속도를 낼 전망이다. 8월까지 3주에 한 번꼴로 열렸던 공판이 앞으로 매주 열릴 예정이다. 101차 공판은 9월 8일로 예정됐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당합병과 관련해 재판부가 "삼성 사건을 집중 심리해 11월께 거의 끝날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2020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과 이를 위한 회계 부정을 지시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로 기소되면서 삼성그룹은 4년째 ‘사법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다. 총수가 재판에 발이 묶이면서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100번의 공판 가운데 ‘재판부의 재가’를 받고 불출석한 12차례를 제외하고, 총 88차례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석 때마다 재판과 관련해 신경써야 하는 요소가 너무 많기에 경영적인 측면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해당 재판의 증거목록만 책 4권 분량으로 방대해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총수의 사법리스크로 삼성이 글로벌 시장의 속도전에서 힘을 내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고 있지만 혁신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은 전무한 게 현실이다.
공교롭게 이 회장의 법정 공방이 시작되면서 '삼성의 대형 M&A 시계'도 멈췄다. 2017년 3월 자동차 전장·오디오 업체 하만 인수(80억 달러) 완료 이후 대형 M&A 소식이 끊긴 상태다. 삼성전자가 올해 내로 대형 M&A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017년 이 회장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삼성이 진행 중이던 굵직한 사안들이 올스톱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과 관련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2021년 8월 가석방됐다. 이와 별도로 부당합병 재판이 지속되면서 사법리스크로 7년째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이달 정경유착의 원흉으로 지목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재가입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명칭을 바꾸며 쇄신을 약속하고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한경협은 정치적 색깔을 버려야 하는 게 최우선 과제이지만 ‘정치권과의 연’을 놓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김병준 전 회장직무대행이 고문을 맡았고, 서울대 출신의 외교부 관료 출신인 김창범 전 인도네시아 대사가 상근부회장으로 선임이 유력한 상황이다. 현 한경협의 구도에서는 정치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경협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이재용 회장 등이 다시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에 휘말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