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4년이 흘렀다. 장진영이 세상을 떠난 지. 우연일지, 그 뒤로 매년 9월1일 하늘은 높고 맑았다. 푸른 제비가 날아다닐 듯했다. 그래서 그립고 시리다.
장진영은 씩씩했다. 당연하게도 마냥 씩씩하지는 않았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기에 아플 때도 많았다. 미스코리아 출신인 장진영은 1997년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데뷔했고, 2001년 영화 ‘소름’과 2003년 ‘싱글즈’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프로필만 보면 처음부터 아름다운 외모에 연기력까지 갖춘 것 같지만, 누가 처음부터 모든 걸 갖출 수 있겠나. 장진영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 정말 무던히 노력했다. 모든 노력이 다 보상을 받을 순 없지만, 그는 힘들고 아픈 순간에도 무던히 씩식하게 이겨내려 애썼다.
그렇게 고생하며 찍었던, ‘청연’은 ‘친일 부역 영화’라는 말도 안되는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날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초가을 맑은 하늘을 보면 문득 장진영의 푸른 제비가 떠오르곤 한다. ‘청연’의 두 주인공 장진영과 김주혁을 이제는 작품으로만 추억해야 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오랜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를 기억한다. 2009년 5월 44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정승혜 대표와 장진영은 작품을 같이 한 적은 없지만, 같은 아픔을 웃으며 버틴 동료기도 했다.
정승혜 대표는 대장암을, 장진영은 위암을 앓았지만 아픈 티를 내진 않았다. 아니 내는 걸 싫어했다. 우연히 병을 치료하다 만난 두 사람은 영화라는 공통분모로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다. 둘 다 씩씩했다. 이준익 감독이란 연결고리가 있어서, 셋이서 즐겁게 영화에 대한 꿈을 나누곤 했다.
정승혜 대표가 먼저 하늘로 떠났을 때, 장진영은 몹시 아파했다. 4달 뒤 장진영이 뒤를 따랐으니 둘은 아픔 없는 곳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리라 믿고 싶다.
씩씩한 장진영에게서 ‘국화꽃 향기’를 떠올리기보단, 푸른 하늘에 힘차게 날고 있는 제비를 떠올리고 싶다. 고인의 14번째 기일인 9월1일, 하늘은 높고 푸르고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