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까지만 해도 박찬호(28·KIA 타이거즈)는 '발만 빠른' 유격수로 통했다. 2014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이 0.243에 불과했다. 2019년(39개)과 2022년(42개) 두 차례 도루왕을 차지했으나, 타율은 2019년 0.260, 2022년 0.272에 불과했다.
올해 박찬호는 완전체 유격수가 됐다. 6일 기준 타율 0.304 119안타 61득점 46타점 27도루를 질주 중이다. 타율은 지난해 커리어하이를 크게 뛰어넘고 있다. 도루 부문에서도 여전히 KBO리그 2위에 올라가 있다. 1위 신민재(LG 트윈스·31개)가 독주하는 듯했지만, 박찬호가 9월 3경기에서만 4개를 더해 추격 중이다.
3할 타자가 되어 가는 박찬호지만 지난 4월만 해도 타율이 0.181에 불과했다. 응원보다 비판과 의심의 눈총이 그를 따랐다. 하지만 5월 이후 상승세를 탔고, 6월을 제외하면 매달 타율 3할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특히 8월 이후 26경기에서 타율 0.383로 쾌조의 타격감을 유지 중이다. 8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1.86(스포츠투아이 기준)으로 월간 쉘힐릭스플레이어 타자 부문 1위에도 올랐다.
본지와 만난 박찬호는 "최근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다. 시즌을 소화하면서 몸이 많이 무거워졌다"면서도 "팀 분위기가 워낙 좋으니 같이 신나서 하게 된다. 최대한 공을 많이 보려고 한다. 내 뒤에 있는 타자들이 말도 안 되게 좋으니 난 베이스만 밟는다면 득점할 수 있다고 생각해 최대한 많이 출루하려고 한다"고 했다. 9연승을 달리고 있는 KIA는 테이블 세터 박찬호와 김도영이 출루하면 나성범-최형우-소크라테스 브리토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들을 불러들인다.
박찬호로서는 누구보다 팬들의 마음을 느꼈을 한 해다. 부진할 때 냉정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그 이상의 응원이 그를 따라온다. 박찬호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4월 부진할 때도 내가 잘하면 분명 응원해 주실 거로 생각했다. 야구 외적인 부분으로 비난받은 적도 있어서 아내가 속상해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도 난 '속상해하지 마. 한두 달만 기다려. 내가 어떻게 (팬들의 마음이) 바뀌는지 보여줄게'라고 장담했다. 결과적으로 그 말처럼 좋게 됐다"며 웃었다.
데뷔 첫 3할 타율, 통산 세 번째 도루왕, 첫 골든글러브까지 모두 가시권이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개인 성적에 욕심이 날 시기인데 박찬호는 수상 욕심이 전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도루는 체력적인 소모가 심하고, 시도할 때마다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타이틀을 위한 기록 도전은 없다는 의미다. 그는 대신 "자연스럽게 매 타석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팀에 내 도루가 필요한 상황이 너무 많았다. 출루하면 도루해야 했고, 기록도 그래서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찬호는 "그런 데(개인 수상)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 박찬호의 가을야구 경험은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1경기가 전부다. KIA가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2017년, 당시 박찬호는 군 복무하느라 우승을 함께하지 못했다. 올해 KIA는 5위(6일 기준)에 있지만, 여전히 최종 성적을 장담할 수 없다. 2위 KT 위즈를 단 3경기로 추격 중인 한편, 6위 두산 베어스와도 4경기가 차이가 난다. 남은 한 달 성적으로 2위도, 6위도 될 수 있다.
박찬호는 "팀이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어떻게든 위 순위로 올라가야 한다. 무조건 팀이 이기는 것만 생각한다. 원래 목표는 3등이었는데, 이 기세라면 2등도 어렵겠지만 불가능은 아닐 것 같다”고 기대 섞인 다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