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격투기를 20년 넘게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치고받는 종목이 올림픽에서 열린다고? 종합격투기는 한 경기를 치르면 최소 몇 달은 쉬어야 할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하고 부상도 잦다. 거칠고 위험한 종합격투기가 올림픽에 갈 리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적어도 몇 달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최근에 입장이 바뀌었다. '종합격투기가 올림픽에 못 열릴 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이킹(브레이크 댄스)이나 서핑,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등의 종목들도 올림픽 가족이 됐다. e스포츠로 불리는 컴퓨터게임조차 올림픽 종목 후보로 거론될 정도다.
종합격투기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올림픽 종목이 된다면 화제성 면에서 대박을 칠 게 틀림없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올림픽은 생각보다 장벽이 높다. 일단 올림픽 종목이 되기 위해선 그 종목을 대표하는 국제적 기구가 있어야 한다. 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수영은 국제수영연맹(FINA), 빙상 종목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등이 있다. 그리고 그 단체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반면 종합격투기는 국제적인 대표 기구가 없다. 국제종합격투기연맹(IMMAF), 글로벌종합격투기연맹(GMMAF)이라는 단체가 있지만, 대외적으로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IMMAF는 IOC 인정단체의 전 단계인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가입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승인이 거절당했다.
이미 기존에 GAISF에 속한 무도 종목의 조직적인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GAISF에 속한 무도 종목은 태권도를 비롯해, 아이키도, 복싱, 유도, 주짓수, 가라테, 검도, 킥복싱, 무에타이, 삼보, 레슬링, 우슈 등 12개다.
종합격투기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단체는 UFC다. UFC는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지만 엄밀히 말하면 미국을 기반으로 한 일개 회사일 뿐이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본부에 두고 있고 인데버그룹이라는 모기업이 대회를 소유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종합격투기의 올림픽 종목화는 당장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시안게임(AG)은 조금 얘기가 다를 수도 있다. AG은 올림픽과 비교하면 진입 장벽이 훨씬 낮다. 개최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전혀 생소한 종목도 정식종목이 될 수 있다. 23일 막을 올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카바디, 크라쉬, 크리켓, e스포츠, 보드게임(바둑, 체스, 브릿지, 샹치) 등 생소한 종목이 대거 펼쳐진다.
종합격투기는 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종합격투기연맹(AMMA)이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태국에서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 정문홍 회장이 이끄는 대한MMA연맹도 AMMA에 속해있다. 중요한 것은 AMMA가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직속기관이라는 점이다. OCA와 개최국의 의지에 따라 정식종목이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프로 경기가 아닌 아마추어 방식의 종합격투기는 어떻게 열릴까. 지난달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경기를 보면 프로 경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일단 복장부터 생소하다. 민소매 상의와 반바지를 입고 경기에 나선다. 오픈핑거글러브를 사용하지만, 충격을 완화하는 패드가 두껍게 붙어 있다. 두툼한 정강이 보호대도 차야 한다. 헤드기어나 다른 보호장구는 차지 않는다. 겉으로는 마치 아마복싱 경기를 보는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5분 3라운드인 프로 경기와 달리 아마추어 경기는 3분 2라운드에 연장라운드 1분이 펼쳐진다. 경기장은 케이지나 링이 아니라 사방이 뚫린 매트다. 상대에게 정타를 날리거나 넘어뜨리면 점수를 획득한다. 상대를 공중에 띄워 테이크다운을 하거나 회전과 점프가 들어간 화려한 발차기를 성공하면 2점을 얻는다. 그라운드 시간제한이 없는 프로 경기와 달리 아마추어 경기는 그라운드가 20초로 정해져 있다.
아직 초창기 단계다. 경기 규칙이나 방식은 계속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십 수년간 국내에서 종합격투기 대회를 운영해 온 로드FC가 AMMA에 경기 규정 및 선수 관리 등에 여러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은 종합격투기가 AG 종목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추어 종합격투기의 경기 모습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삼보와 유사하다. 삼보는 올림픽 종목에 가장 가까운 종목 중 하나다. 같은 격투기 범주에 드는 킥복싱이나 무에타이도 AG 참가를 노리고 있다. 종합격투기로선 비슷한 특성이 있는 이들 종목과 어떻게 차별화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