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에서 노메달 수모를 당한 한국 배드민턴은 지난 5년 동안 침체기를 거쳐 부흥기에 진입했다. 세대 교체 주자들이 차례로 톱랭커로 올라섰다.
지난 3월 열린 전영오픈에서 여자단식(안세영)과 여자복식(김소영-공희용)이 우승했고, 8월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안세영과 혼합복식 서승재-채유정이 정상에 올랐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나선 항저우 AG 단체전에서도 남자 대표팀은 동메달, 여자 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29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목표로 내걸은 전 종목 메달 획득은 실패했다. 남자단식에 출전한 두 선수 전혁진과 이윤규가 3일 열린 32강전에서 나란히 탈락했다. 랭킹 47위 전혁진은 12위 니시모토 겐타(일본), 119위 이윤규는 21위 스리칸트 키담비(인도)에 각각 게임 스코어 0-2으로 졌다.
남자단식은 올 시즌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투어 대회에서 한 번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 종목이다. 항저우 AG에서도 유일하게 메달 획득을 낙관할 수 없었다.
2014 인천 AG 단체전 금메달에 기여했던 전혁진은 그사이 오른쪽 무릎 부상 탓에 긴 시간 재활 치료를 하느라 전성기가 조금 지났다. 2020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당시 랭킹 1위였던 모모타 겐타(일본)을 꺾었던 허광희는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종아리 부상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항저우 AG에서 나서지 못했다.
한국 남자단식 선수가 랭킹 1위에 오른 건 2017년 9월 21일 손완호가 마지막이다.
김학균 총감독은 내년 열리는 파리올림픽을 대표팀의 최종 무대로 삼고 있다. AG도 국민적 관심이 모이는 국제대회지만, 올림픽에서의 쾌거가 가장 큰 목표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남자단식은 항저우 AG에서 희망을 줬다. 특히 아직 국제무대 경험이 많지 않은 이윤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윤규는 개인전에선 32강전에서 탈락했지만, 단체전에선 세계 톱랭커를 연달아 잡았다. 지난달 28일 치른 한국과 말레이시아와의 단체전 16강전에선 랭킹 19위 응쩌용을 2-0으로 격파했다. 앞선 2매치(복식 1경기)에서 이 종목 랭킹 4위 서승재-강민혁 조가 아론 치아-소위익 조에 패하며 기세를 내준 상황이었지만, 이윤규가 호쾌한 스매시를 연달아 상대 코트에 꽂으며 승리하며 8강 진출 발판을 만들었다.
이윤규는 이튿날 인도네시아와의 8강전에서도 랭킹 5위 조나탄 크리스피를 2-0으로 완파하며 다시 한번 이변을 보여줬다. 남자 대표팀은 인도를 넘지 못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윤규의 깜짝 활약 덕분에 동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작년부터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하며 경험을 쌓은 이윤규는 몇 달 사이 기량이 급성장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전혀 주목 받지 못했지만, 남자단식 선수 중 가장 돋보였다. 연달아 톱랭커들을 꺾고도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출전 기회가 더 주어지면 충분히 더 잘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보일 만큼 배포도 있는 선수다.
한국 대표팀은 인도와의 단체전 준결승전 5번째 주자(단식 3경기)로 나섰던 조건엽도 전 랭킹 1위 키담비를 상대로 1게임을 빼앗는 등 치열한 접전 승부를 보여주며 선전했다. 이윤규와 조건엽이 더 성장하고, 허광희까지 대표팀에 다시 합류하면 경쟁 시너지도 나올 수 있다. 파리올림픽에선 남자단식에서도 메달을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