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토끼해를 맞아 ‘토끼띠’ 강백호(KT 위즈)는 연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빚은 ‘껌 논란’과 그간 국제대회에서의 부진을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서 씻어내려는 각오였다. 올해 목표를 묻는 질문엔 “토끼띠 선수들 중 최고인 ‘토끼왕’이 되겠다”라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강백호의 봄과 여름은 너무나 추웠다. WBC에선 맹타를 휘두르고도 ‘세리머니 주루사’로 도마 위에 올랐고, 5월 정규시즌 경기에서는 안일한 ‘아리랑 송구’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며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계속되는 논란과 자책 속에 강백호는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결국 컨디션 문제로 8월까지 경기에 잘 나서지 못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듯했다.
다행히 강백호는 9월을 기점으로 조금씩 살아났다. AG 대회 일정에 맞춰 타격감을 끌어 올렸고, 대회를 앞두고 열린 대표팀 소집 훈련에선 먼저 나서 기합을 불어 넣는 등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이번 대회에 나서는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마음을 굳게 먹고 출전한 AG에서 많은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지만, 강백호는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을 확정한 후 강백호는 눈물을 흘렸다. “대표팀에 와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했다”고 말한 그는 “4개월 동안 공황장애가 심했다. 이번 시즌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강백호는 이번 금메달로 국제대회 명예 회복은 물론, 그간의 설움도 훌훌 털어냈다.
강백호는 이제 소속팀으로 돌아와 ‘토끼왕’을 향한 질주에 나선다. KT는 이미 가을야구행을 확정했다. 10일 두산 베어스와 시즌 최종전에서 2위 자리를 굳힐 예정이다. KT가 한 경기만 이겨도, 혹은 두산이 남은 8경기에서 1경기만 패해도 KT가 플레이오프에 직행(정규시즌 2위)한다. 비교적 높은 위치에서 포스트시즌을 시작하는 만큼 한국시리즈에서 역전 우승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강백호가 AG 금메달에 이어 가을야구 역전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낸다면 진정한 ‘토끼왕’에 등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