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인생을 본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간접체험해 보기도 하고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느끼기도 한다.
김형서에게 영화 ‘화란’은 그런 작품이다. 가수로선 비비로, 배우로선 본명 김형서로 활동하는 그는 “‘화란’을 통해 내 인생을 제3자의 시각에서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화란’은 무거운 이야기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연규(홍사빈)는 복지가 잘돼 있다는 화란(네덜란드)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그런 연규에게서 자신의 예전을 보게 된 치건(송중기)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런데 손을 맞잡고도 두 사람의 불행은 끝나지 않는다. 김형서가 연기한 하얀은 연규의 이복여동생으로 연규에게 계속해서 선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어쩌면 하얀은 연규의 유일한 기댈 곳이다.
“정도가 어떻든 모두가 아픔을 안고 살아가죠. 그 아픔의 크기는 남이 결정해주는 게 아니고요. 엄마나 아빠가 제게 ‘그건 별일 아니야’라고 하더라도 당당하게 ‘저 힘들어요. 기댈 곳 좀 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거 하나를 못 해서 영화 속 인물들의 상황도 파국으로 치닫잖아요.”
김형서는 ‘화란’ 속 인물들에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하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우리 아빠가 ‘형서야, 나 너무 힘들다’라고 얘기만 했어도,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얘기를 했어도 안 일어날 일들이 있었다”고 가정사를 언급했다.
김형서는 지난해 SNS로 팬들과 소통하다 번아웃 증상을 호소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 때의 일을 언급하며 “그렇게 터져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안 터졌으면 죽었을 것 같다”고도, “내가 (힘든 것을) 참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고, 괴로움을 되물림하게 된다”고도 했다.
“사실 번아웃 증상이 왔을 때는 연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그게 트리거가 돼서 폭발했던 것 같아요. 한 3일 정도를 제대로 자지 못 하고 3~4시간 자고 일어났으니까요. 소속사가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저를 몰아붙인 건 저예요. 제가 얼마 전에 깨달았는데요, 돈으로도 행복은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돈으로 슬프지 않을 권리는 살 수 없을 뿐이죠.”
이후 김형서는 꾸준한 운동과 자신을 지나치게 혹사시키지 않는 스케줄 운용으로 건강한 일상을 되찾았다. 인터뷰 사이사이에 미팅을 끼워넣어 빼곡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다. 혹독한 다이어트도 멈췄다. 쉴 시간이 있어야 방전되지 않는다는 걸 김형서는 이때 일로 크게 깨달았다.
‘화란’은 지난 11일 개봉한 이후로 순항하고 있다. 지나치게 불행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작품이라 관객의 호응이 염려됐는데, 벌써 누적 13만 명을 돌파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본 사람들 사이에선 호평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게 의미 있다.
김형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 뿐이다. 호평을 받는다고 해서 ‘네, 저 잘해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아닌 것 같다”면서 “그래서 더 칭찬만 받고 싶다. 칭찬만 해주셔도 나는 내게 엄격한 사람”이라며 웃었다.
“목표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안정돼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