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견 트롯 가수들에겐 고민이 많다. 신곡을 발표해도 나가서 노래할 만한 방송무대를 찾기 어렵고, 유일한 수입원인 행사 무대도 현저하게 줄었다.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중심이 돼 이끄는 K팝이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니 K트롯도 외국에서 인기를 누려 그 틈바구니라도 파고들어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기미는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트롯 가수들이 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댈 만한 희망은 아무래도 신곡 발표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노래를 히트시켜 자신의 인기를 높이다 보면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신이 부를 신곡을 고를 때 가장 고려해야 할 일은 아무래도 자신의 목소리와 창법에 어울리는 곡인가의 여부다. 보다 좋은 곡을 불러야 한다는 의욕 때문에 새로운 트렌드의 곡을 고르다가 자신의 개성과 장점을 살리지 못해 팬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요계의 명곡 ‘장녹수’(박성훈 작사·김수환 작곡)를 부른 전미경도 지난 5년 동안 끊임없이 신곡을 만들어 발표하면서 팬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2019년 ‘호박’(김정호 작곡)이란 신곡을 발표해 해학적이면서도 위트 넘치는 노랫말로 관심을 끌었다. 꽃 피는 봄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가을이 되어 깊은 맛이 드는 호박에 인생을 비유한 절묘한 가사로 관계자들과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특히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 안 되지만 줄 없는 호박이 나는 좋아”라거나 “늙어서 사랑받는 건 너밖에 없다” 등의 절묘한 표현으로 작사가로서의 실력과 감각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러나 잠깐 관심을 모으기는 했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2020년 3월에는 코로나 감염자들의 급증으로 위기를 맞은 대구 시민들을 위한 응원가 ‘힘내요 우리’(전철완 작곡)를 발표해 또 한 번 관심을 끌었다. 그 해 9월에는 같은 노래에 가사 일부를 바꾸고 제목까지 바꾼 ‘힘내요 대한민국’을 부르기도 했다. 이후 ‘마포는 내 사랑’(김정호 작곡), ‘부산자매’, ‘내 안에 사랑’(이상 전철완 작곡)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심지어는 ‘KPGA 응원가’를 만들어 부를 정도로 의욕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전미경이 발표한 일련의 신곡들을 소개하는 것은 최근 발표한 신곡이 지금까지 내놓은 세미트롯 취향의 곡들과는 달리 트롯필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발표한 ‘미운 남자’(안수 작곡)라는 노래다.
전미경은 ‘미운 남자’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지난 5년 동안 발표한 곡들과는 달리 빠르고 뜨겁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노래를 직접 부르다 보면 팬들의 반응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그 느낌이 왔다고 설명을 했다.
지난 9월 경기도 구리시 홍보대사로 임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리대교 명명 캠페인’ 현장에 초청을 받아 무대에서 처음으로 ‘미운 남자’를 불렀다. 현장에 있던 구리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구리대교 명명 캠페인은 33번째의 한강 횡단 다리로 건설 중인 새 교량(1725m)의 이름을 구리대교로 하자는 구리시민들의 캠페인을 말한다. 세종-포천 고속도로의 일부로 올해 말 완공 예정인데 교량의 반대편인 남쪽에 위치한 서울 강동구 측은 이 다리의 이름을 고덕대교로 붙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미경은 이날 “마음이 울적해 광화문 포차에서 술 한 잔 기울이는데”라는 ‘미운 남자’의 앞부분 가사 중 “광화문 포차에서”를 “구리시 포차에서”로 바꿔 부르는 애교 넘치는 애드리브로 현장에 있던 구리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자신의 히트곡 ‘장녹수’처럼 보다 복고적이고 진한 느낌의 트롯을 노래했을 때 팬들의 관심을 더 끈다는 사실을 ‘미운 남자’가 증명한 셈이다. 자신이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을 때 불렀던 노래의 스타일, 즉 기본으로 돌아가니 팬들이 더 열광한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호박’에서 ‘내 안에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운 남자’에 못지않은 감성적인 노랫말과 예쁜 멜로디의 곡들이지만 ‘미운 남자’처럼 전미경의 옅은 허스키 보이스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든 고전적이고 구성진 창법의 트롯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