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였던 결선 경기가 갑자기 오전으로 당겨졌다.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법도 했지만 조기성은 값진 은메달(남자 S4·지체장애 100m)을 따냈다. 그리고 이 모습을 경기장을 찾은 가족들이 지켜봤다. 조기성은 9년 만에 국제대회 ‘직관’을 한 가족들 앞에서 뜻깊은 은메달을 따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이 전화위복이 됐다. 조기성의 결선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던 오후 입장권은 이미 동이 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25일에 돌아가야 했다. 이날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면 가족들은 아들의 경기를 보지 못하고 허탈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관중이 별로 없는 오전으로 경기 시간이 바뀌었고, 입장권을 구한 가족들은 관중석에서 조기성의 은빛 역영을 볼 수 있었다.
태극기와 플래카드를 힘차게 흔들며 조기성을 응원했다는 어머니 김선녀(53) 씨는 “아들의 국제대회 경기를 보러 온 건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APG)에서 본 뒤로 처음이다. 아들이 메달을 따서 더 좋았다”라고 말했다. 2016년 리우 패럴림픽과 2018 인도네시아 APG는 가족이 이동하기에 너무 멀었고, 2020 도쿄 패럴림픽은 코로나19 여파로 참관하지 못했다.
조기성은 지난 5년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선 자유형 100m 5위, 자유형 200m 6위에 머물렀다. 선천성 뇌병변장애로 하체를 쓰지 못하는 조기성은 시간이 갈수록 어깨 관절과 근육이 굳고 있어 역영이 쉽지 않다. 계속되는 고전으로 조기성은 한때 은퇴까지 생각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자식을 보는 가족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터.
하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조기성을 믿었다. 김선녀 씨는 “아들이 자기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은 아니다. 엄마 아빠 속상한 일은 얘기 안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넘어가곤 한다. ‘너무 힘들면 은퇴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기도 했는데, 이제 종목(평영)을 바꾸고 기록이 조금씩 만들어지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로워진 것 같더라. 지금은 마음을 다잡고 ‘한 번 더 해보자’라는 각오로 열심히 하는 것 같다”라며 흐뭇해 했다. 아버지 조명환(59) 씨도 “워낙 성격이 밝은 아이라 걱정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먼 발걸음을 한 가족들은 경기 후 조기성과 짧은 만남을 가졌다. 조기성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은메달을 따서 기분이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고, 가족들도 곧 돌아가야 하기에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생겼다. 누나와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차례로 맞잡은 조기성은 짧지만 뜻깊은 응원을 받았다.
조기성의 시상식이 이날 저녁에 열리는 바람에 아들이 은메달을 목에 건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오후 입장권이 구해지지 않았기 때문. 25일에 출국해 26일 열리는 조기성의 경기도 지켜볼 수 없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쉬움의 크기만큼 그에게 기운을 불어주고 돌아갔다. 김선녀 씨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 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더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아들을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