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부터 날아들 거라는 제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변화구더군요. 낙차 큰 커브라고 할까요. 마치 어깨 위에서부터 등으로 내려와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듯 합니다. 김태형 신임 롯데 자이언츠 감독님의 말입니다. 24일 부산서 열린 취임식 당시 행사에 앞서 주요 선수 네 명을 따로 만난 자리에서 꺼낸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 선수들이라면 그 말을 듣고 어떤 느낌일까요. 노력했는데, 성과가 나오는듯 했는데, 허무하게 끝나버린 지금의 상황, 누구보다 쓰린 속으로 감내하고 있는 당신입니다. 억울한 심정이고 전쟁을 치렀으니 심신은 지쳤겠죠. 부족한 결과를 내놓았으니 불호령이 떨어질까요. 잔소리를 들을지 신경 써야 하는 처지,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전해진 그의 첫 마디는 위로입니다. ‘강골’ 감독님 말 속에서 온기가 느껴지네요. 이런 볼 배합 예상하셨습니까.
이 장면을 포착한 자이언츠 팬들이 제법 계셨던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글 중에 "뭉클했다"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한 시즌 애간장을 태운 야구팬 역시 심정적으로 선수들과 같은 처지구나’라는 생각이 저도 들었습니다. 위로가 필요하시겠다 싶습니다. 저도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여러분께서도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롯태형’이 된 감독님은 뚝심 있는 강한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는 분입니다. 강단 있는 모습과 선수를 휘어잡는 ‘짤’이 인터넷에서 많이 보입니다. 감독의 야구관에 대해 데이터 분석 보다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 대처 능력에 무게를 두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정통파, 또는 올드 스쿨로 불리는 베테랑 감독의 판단과 결정의 근거를 일각에선 직관이나 감에 의존한다고 쉽게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분들은 심리의 대가입니다. 어느 순간에 어떻게 선수를 대하는지를 아는 ‘밀당’의 전문가입니다.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소속팀(텍사스 레인저스)을 월드시리즈로 이끈 백전노장 브루스 보치 감독이 대표적입니다. 26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2000승 이상을 거둔 그는 월드시리즈에서도 세 차례나 우승한 명장입니다. 스포츠 미디어 ESPN은 최근 그를 “야구 경기를 살아있는 생명체(living organism)로 다룬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생명체는 여러 기관들이 각자 역할을 하며 다양한 환경에 대응해야 살아 남습니다. 따라서 야구 경기는 단지 숫자의 조합과 변환이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 선수들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게임이라는 뜻 아닐까요. 그것이 보치 감독의 철학입니다.
ESPN은 이를 좀 더 설명합니다. “그는 야구 선수의 실패를 이해하고 그 여파를 덜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스포츠에서도 실패는 가슴 아픈 결과입니다. 세상의 냉정한 관점으로 실패는 비효율이고 배제의 기준입니다. 이 베테랑 감독은 실패가 야구라는 게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현실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보치는 실패한 선수에게 가끔은 위트를 날리며 따스하게 다독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레인저스의 외야수 트레비스 잰코프스키는 “감독님도 통계 분석을 씁니다. 그렇지만 자기 감(gut)과 본능(instinct)도 믿죠. 우리 선수는 컴퓨터가 아니니까요. 우린 사람이잖아요. 선수들은 감독이 그렇게 대해 주기에 펄펄 날아다니죠(thrive)”라고 말합니다. 선수의 심리, 마음을 간파하고 툭 던진 감독님의 짧은 한마디가 큰 힘이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김태형 감독님의 ‘애썼다’는 말이 보치 감독이 실패를 다루는 능력과 맥이 닿는다고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특히 실패로 상처받은 사람에게 먼저 전하는 말이 위로와 공감이란 데 주목합니다. 원인 분석과 진단, 처방은 그 다음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위로를 깜빡 잊고, 방법부터 찾아주려 합니다. 힘든 주위 분들의 슬픔을 잊기도 합니다. 어떠세요.
코칭 대화의 전문가인 고현숙 국민대 교수는 “상처받은 감정에 공감하고 충분히 기다려 주라"라고 말합니다. 어느 상담 세션에서 내담자가 깊은 슬픔, 강한 분노를 내비치자 고 교수는 상담 시간의 거의 전부를 내담자가 감정을 풀고 정리하는 데 씁니다. 마음을 충분히 비워야 일어설 용기와 앞으로 나갈 결심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감독님의 위로에 진심이 담겼네요.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