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저는 한류 1세대죠. 일찍 중국으로 진출해 현지에서 드라마도 찍었으니까요. 무명이 길었기 때문에 당시 그렇게 해외에서까지 주목받았던 것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어요.”
배우 장서희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영화 ‘독친’으로 약 6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그는 여전히 드라마 ‘인어아가씨’로 크게 주목 받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아역배우로 데뷔해 오랜 기간 거쳤던 무명 기간은 장서희의 마음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어떤 신문에서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를 한다는 걸 봤어요. 입상을 하면 왕관하고 망토를 준다는 거예요. 그게 갖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어요. 거기서 진(眞)이 되고 마요네즈 광고를 찍은 게 데뷔였어요.”
데뷔까지의 길은 빠르고 매끄러웠지만 이후의 활동은 그렇지 않았다. 31살에 ‘인어아가씨’를 만날 때까지 두드러지는 활동이 없었다. 예쁜 어린이 진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순식간에 무명에 가까운 배우가 됐다.
“부모님은 사실 제가 연예계 활동을 하는 걸 싫어하셨어요. 일을 하다 보면 밖에서 자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31살에 ‘인어아가씨’가 잘되고 나서 제가 마음고생도 덜하고 밖에 나가 대접도 받고 하니 그제야 환영을 해주시더라고요. ‘독친’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죠.”
‘독친’은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지독한 사랑을 주는 엄마 혜영(장서희)이 딸 유리(강안나)의 죽음을 추적하며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심리극이다. 장서희는 혜영 역을 맡아 딸에게 어긋난 사랑을 쏟는 엄마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 활동을 했으니 부모님이 딸 일에 열성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지만 장서희의 말은 “전혀 아니”라는 것. 그는 “평범한 집의 셋째 딸, 막내로 자랐다”며 웃었다.
온건한 부모님 아래서 배우로서, 또 인간으로서 천천히 성장해온 장서희. ‘인어아가씨’로 크게 이름을 알린 이후에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국내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다. 이후 이 작품이 중국에까지 소개되며 한류 배우로 활동 지평을 넓혔다.
이렇듯 천천히 분명한 성장을 이뤄온 장서희이기에 이제 웬만한 부침에는 마음이 굳건하다. 더디게 걸을 때가 있으면 달려나갈 순간이 오는 법이고, 또 달리다 보면 멈출 때도 있는 법이다. 여행이 가장 좋다는 장서희에겐 ‘독친’으로 처음 해외 영화제에 나가본 것도 큰 기쁨이다. 장서희는 ‘독친’으로 지난 9월 ‘제28회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했다.
“일본에서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웬만한 주요 매체에서는 다 와서 취재해갔어요. 해외영화제에 가본 게 사실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굉장히 신나고 기분 좋았어요.”
장서희는 이번 영화제 참석을 통해 K콘텐츠를 향한 글로벌적 관심을 재확인했다. 한류 1세대로 중국 팬들을 사로잡았던 선배로서 흐뭇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장서희는 “후배들이 무척 자랑스럽고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나이에 이렇게 영화로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저는 늘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배우는 연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저는 지금도 촬영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 영화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것.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대중과 오래 만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