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한국시리즈(KS)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KT 위즈 투수 박영현은 “행복한 시즌이었다”라고 말했다. 팀은 10위에서 2위로 수직상승해 KS 무대까지 올랐고, 자신은 최연소 홀드왕(32개)에 이어 첫 성인 국가대표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남긴 소중한 한 해였기 때문이다.
가을무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다. 정규시즌의 활약을 통해 포스트시즌에서도 필승조 역할을 할 것임은 자명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 플레이오프(PO)에서 4경기 2홀드 5이닝 무실점으로 탄탄한 활약을 펼친 그는 KS 1차전에선 마무리 김재윤 대신에 클로저로 등판해 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올리기도 했다.
투혼과 희생정신도 남달랐다. 박영현은 1차전에서 타구에 정강이를 맞는 악조건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하며 프로 데뷔 두 번째 KS 세이브를 올렸다. 계속되는 연투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그는 “계속 던질 수 있습니다”라며 이강철 KT 감독에게 어필했다. 그리고 그는 2차전 마운드에도 올라 공을 던졌다.
그러나 의욕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체력이 버텨주지 못했다. KS 2차전에서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3차전에서도 선두타자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다. 구위가 떨어졌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박영현의 체력 저하를 언급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박영현은 3차전과 5차전에서 모두 무실점을 기록하며 제 역할을 다했다.
준우승 확정 후 만난 박영현은 “행복한 KS였지만, 잘 못 던져서 아쉬운 시리즈이기도 했다,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준비를 잘해서 내년 가을야구를 또 노리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벌개진 눈을 보고 “울었나”라고 질문하자, 그는 “난 절대 안 운다”라고 웃으면서 “피곤해서 눈이 너무 아프다”라며 눈을 비볐다.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박영현은 “(2, 3차전에서) 힘이 많이 빠지긴 했다. 나도 ‘이 공으로 어떻게 던지지. 운에 맡기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코치님이 ‘네가 뭘 운으로 던지냐. 실력으로 (믿고) 던져라’고 해주시면서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셨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나는 타자를 (구위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라는 걸 재확인했고, 이를 되새기면서 경기했다”라고 돌아봤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박영현의 표정은 후련했다. 박영현은 “시리즈 도중 힘이 떨어진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아쉽게 지긴 했지만 분위기는 괜찮다. 내년에 준비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아쉬움을) 넘기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10위에서 2위까지 올라온 팀이 어딨나. 우리 팀이 대단하고, 이 팀의 일원이라서 영광이고 뿌듯하다. 행복한 한 해였다”라고 돌아봤다.
개인적으로도 이룬 것이 많은 한 해였다. 박영현도 “여러 꿈을 이룬 한 해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대표로 발탁돼 아시안게임 무대도 서고 금메달도 땄다. 이보다 더 완벽한 한 해는 없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우승까지 했으면 너무 많은 꿈을 (너무 빨리) 이루는 거 아닌가. 이젠 이(우승) 꿈 하나만 바라보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박영현은 KS가 길어지면서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대표팀 합류가 불발됐다. 두 번째 국가대표 기회가 무산됐다. 아쉽지는 않을까. 박영현은 “너무 힘들어서 가서도 도움이 못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지금은 잘 쉬어서 내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