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의 패스, 조규성의 득점.’
한국 축구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득점 공식이 다시 한번 재연됐다. 클린스만호는 답답한 흐름을 깨고, 후반전 골 폭풍을 일으키며 대승을 일궜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24위) 축구대표팀은 1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싱가포르(155위)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1차전에서 5-0으로 크게 이겼다. 2023년 한국에서 열리는 마지막 A매치이자, 2026 북중미 월드컵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화려한 승리로 장식했다.
결과와 별개로 첫 전반 45분의 흐름은 다소 답답했다. 한국은 예상대로 높은 점유율을 앞세워 싱가포르를 압박했는데, 좀처럼 수비진을 뚫지 못했다. 특히 마무리 패스가 번번이 빗나가 유효슈팅까지 나오지 않는 등 경기장 날씨처럼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이어 전반 29분 노마크 찬스를 잡은 이재성(마인츠 05)의 헤더가 골키퍼 다리에 막혔고, 34분에는 조규성(미트윌란)의 발리 슈팅이 골대를 강타하는 등 불운까지 겹쳤다. FIFA 랭킹에서 131계단이나 아래인 싱가포르를 상대로 좀처럼 균열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전반 막바지, 한국 팬들이 기억하는 득점 공식이 재연됐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오른쪽 측면에서 수비 뒷공간으로 향하는 절묘한 로빙 패스를 시도했다. 싱가포르 수비는 완전히 공을 놓쳤는데, 조규성은 이를 포착해 가볍게 밀어 넣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조규성의 A매치 8호 골이자, 클린스만호 출범 후 터진 두 번째 득점이었다.
이 장면은 바로 지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가나와의 경기에서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이강인은 팀이 0-2로 뒤진 후반 12분 교체투입, 직후 완벽한 왼발 크로스로 조규성의 헤더 골을 도왔다. 조규성은 3분 뒤 동점 골까지 터뜨리며 월드컵 최대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비록 팀은 졌지만, 이강인-조규성이 만들어 낸 득점 공식은 축구 팬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 됐다. 그리고 이날, 해당 장면이 재연된 셈이다.
조규성은 후반 시작과 함께 황희찬의 추가 골을 돕기도 했다. 이후 후반 20분 황의조와 교체돼 임무를 마쳤다. 한국은 손흥민·황의조·이강인의 연속 골에 힘입어 홈팬들 앞에서 대승을 완성했다.
한편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취재진과 만난 조규성은 “오늘 경기는 지난 베트남과의 평가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라면서 “직전 경기에선 골이 빨리 들어가서, 편하게 주도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아 힘들었다. 그런데 이강인 선수의 크로스가 너무 좋아서, 골이 들어가 이렇게 크게 이겼던 것 같다”라며 공을 돌렸다.
이어 취재진이 ‘이강인과의 호흡’에 대해 묻자, 조규성은 “일단 (이)강인 선수가 공을 잡으면, 워낙 크로스 궤적이 좋다. 그냥 (이)강인 선수가 (골을) 가져다주는 거다”라고 미소 지었다.
한편 조규성이 A매치 득점을 올린 건 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 이후 3경기 만이다. 이에 조규성은 “항상 말씀드리는데, 이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 당연히 골도 골이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더 편하게 뛸 수 있게끔 뛰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겸손한 답변을 전했다. 동시에 “여기에 골까지 더 넣는 게 당연히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골이 아니더라도 경기를 뛰는 것만으로도 좋다”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2차 예선 첫 경기를 대승으로 마무리한 한국의 다음 일정은 오는 21일 열리는 중국과의 C조 2차전이다. 더군다나 원정에서 열리는 만큼, 팬들 사이에선 ‘부상’이라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조규성은 이에 대해 “오늘도 거친 경기였지만, 크게 다친 선수 없이 모두 컨디션 좋아 보인다. 다가오는 중국 원정, 또 중국이라는 팀이 거칠어서 쉽지 않을 거 같다”면서도 “상대가 거친 만큼, 우리도 더 거칠게 해서 오늘처럼 대승을 이루겠다”라고 힘줘 말했다.
김우중 기자 ujkim50@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