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파블로 가비(19·바르셀로나)가 사실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소속팀 바르셀로나와 대표팀을 오가며 혹사 수준으로 출전해 그동안 많은 우려를 낳았던 가운데,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치른 무의미한 대표팀 경기마저 선발로 출전했다가 결국 최악의 상황과 마주했다.
가비는 20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간) 스페인 바야돌리드의 에스타디오 호세 소리야에서 열린 2024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 예선 A조 조지아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전반 26분 만에 교체돼 경기를 마쳤다.
가비는 전반 20분께 페널티 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상대 수비수와 경합하다 하체끼리 충돌한 뒤 고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다시 일어서 경기에 나선 그는 공중볼을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후속 동작을 이어가다 오른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결국 그는 절뚝거리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아스 등 스페인 매체들에 따르면 가비는 초기 검사에서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정밀 검진이 필요하지만 사실상 6~8개월은 회복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이번 시즌 남은 경기 출전은 불가능하고, 다음 시즌에도 초반 정상적인 출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현지에서 전망하는 6~8개월의 기간 마저도 이상적인 회복 시간일 뿐, 정확한 부상 정도나 향후 회복 속도에 따라 복귀 시점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설상가상 이번 부상이 앞으로 오랫동안 가비의 무릎 상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비의 부상 소식에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 모두 ‘초비상’이 걸렸다. 2004년생인 가비는 이미 2년 전 스페인 대표팀 최연소 데뷔(17세 61일) 기록을 비롯해 최연소 A매치 득점(17세 304일) 등을 세우며 스페인 대표팀의 미래이자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선 펠레(17세 239일) 이후 64년 만에 월드컵 최연소 득점(18세 110일)의 기록까지 세웠다.
이처럼 스페인 대표팀 중원의 핵심으로 활약하던 가비의 이탈로 스페인 대표팀은 당장 내년 6월 유로 2024 본선을 가비 없이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가비의 활약을 앞세워 예선을 통과해 본선 무대를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정작 가비 없이 유로 2024 대회를 치러야 하는 셈이다. 나아가 가비는 7월 열리는 파리 올림픽 출전도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이번 시즌 아웃 부상에 대한 후폭풍이 유독 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A매치 기간 가비를 차출시킨 바르셀로나 역시 상황이 복잡해졌다. 가비는 올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2경기, UEFA 챔피언스리그 3경기에 출전하는 등 이미 핵심 선수로 활약 중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시즌을 가비 없이 치러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그나마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400만 달러(약 52억원) 수준의 보상금을 받을 예정이지만, 가비가 차지하는 팀 내 비중을 고려하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수준의 보상인지는 미지수다. 가뜩이나 프리메라리가 순위 경쟁이 치열한 데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경쟁까지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뼈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워낙 재능이 남달랐긴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혹사 수준’으로 출전시킨 게 결국은 독으로 돌아온 모양새다. 가비는 지난 2021~22시즌에만 바르셀로나 1군 소속으로 47경기에 출전했고, 2022~23시에도 49경기를 뛰었다. 스페인 A대표팀 경기 역시 2022년엔 13경기, 올해 10경기를 소화했다. 일반적인 성인 선수도 부담스러운 경기 출전 수인 데다, 아직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어린 선수라는 점에서 혹사 우려는 계속 잇따랐다.
심지어 가비가 부상을 당한 조지아전은 스페인 대표팀이 이미 유로 2024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치른 경기였다. 굳이 출전할 이유가 없는 경기에서조차 강행군을 이어가다 결국 시즌 아웃에 해당하는 심각한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가비는 부상으로 교체된 뒤 라커룸에서 오랫동안 눈물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스페인 대표팀 선수들도 그런 가비를 위한 세리머니를 통해 그의 쾌유를 빌었다. 스페인축구협회도 공식 SNS를 통해 가비 유니폼을 든 페란 토레스의 사진을 게재했는데, 정작 팬들의 반응은 중요성이 떨어지는 경기에 가비에 출전시켜 결국 부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에 대한 불만 목소리로 가득하다.
바르셀로나 구단 입장 역시 이미 본선 진출 확정으로 중요성이 크게 떨어진 경기에 가비를 또 출전시킨 스페인 대표팀을 향해 크게 분노한 상태다. 스페인 문도 데포르티보는 “구단은 여전히 스페인축구협회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이스 데 라 푸엔테 스페인 축구대표팀 감독은 그러나 "가비의 부상이 심각한 것 같다.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픈 승리"라면서도 '혹사' 논란에 대해선 "불운한 부상이었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가뜩이나 혹사 논란이 일고 있는 선수를 중요도가 적은 경기에 출전시킨 스페인 대표팀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 구단 역시 어린 시절부터 혹사 수준으로 가비를 출전시킨 것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진 못한 상황이다. 스페인 축구대표팀의 결정에 선뜻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가비의 몸 상태가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은 결국 바르셀로나의 적잖은 출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탓이다.
이미 바르셀로나는 파티 뿐만 아니라 앞서 페드리, 안수 파티 등 다른 어린 재능들도 잇따라 부상으로 잃었는데, 가비처럼 모두 어린 나이부터 '혹사 논란'이 일었던 재능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가비의 시즌 아웃 판정 소식에 스페인 대표팀을 넘어 바르셀로나 구단을 향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