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김천종합운동장. 서울 이랜드를 1-0으로 꺾고 K리그2 시즌 최종전을 마친 김천 상무 선수들과 팬들의 시선은 일제히 전광판으로 향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은 부산 아이파크와 충북 청주의 경기 영상이었다. 우승을 위한 김천의 남은 시나리오는 부산의 서울 이랜드전 승리 실패. 추가시간까진 부산이 1-0으로 앞서 있었다.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4분, 충북청주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시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극적인 동점골에 기뻐하던 선수들은 다시 숨을 죽인 채 남은 시간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부산의 무승부가 확정되는 순간, 김천 선수단과 팬들은 다시 한번 환호했다.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대역전 우승이었다.
선수단과 함께 그라운드에 있던 정정용(54) 감독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스태프들과 기쁨을 나누더니, 이유현 등 선수들과도 격하게 포옹하며 환하게 웃었다. 감독 부임 5개월 만에 이룬 극적인 K리그2 우승, 그리고 다음 시즌 K리그1 다이렉트 승격이었다.
김천의 우승과 승격뿐만 아니라 정정용 감독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큰 순간이기도 했다. 프로팀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구겨졌던 자존심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김천의 상대팀이 정 감독의 친정팀이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서울 이랜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달랐다.
앞서 정정용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들을 이끌었다. 특히 지난 2019년엔 20세 이하(U-20) 대표팀을 이끌고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준우승 신화를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이강인이 U-20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했던 대회였다. 월드컵 결승 무대까지 이끈 정 감독의 다음 스텝에도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렸다.
여러 프로팀의 러브콜을 받았던 정정용 감독의 선택은 2년 연속 2부 최하위에 머물렀던 서울 이랜드였다. 그러나 서울 이랜드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부임 당시 3년 안에 결과를 내겠다는 각오를 밝혔지만, 세 시즌 동안 5위와 9위, 7위에 그쳤다. 결국 그는 “승격을 향해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실망시켜드려 아쉬운 마음이 크다”며 지난해 서울 이랜드 지휘봉을 내려놨다. 정 감독의 프로 첫 커리어는 사실상 실패였다.
야인으로 지내던 정정용 감독은 김천의 제안을 받아 반년 만에 K리그 무대로 복귀했다. 이번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의 커리어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그는 부임 직후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가장 집중했다. 군 복무를 위해 잠시 거쳐가는 팀이 아닌, 매 경기 프로와 군인다운 정신력을 강조했다. 여기에 공격적인 축구에 무게를 뒀다. 정 감독 부임 전과 후로 김천의 득점은 경기당 1.46골에서 2.17골로 크게 늘었다.
부임 전 6위였던 김천은 정정용 감독 부임 직후 한 달여 만에 선두로 올라서더니 한 달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 부산의 반격 속에 9월 이후에는 선두를 내줬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승 경쟁을 이어갔다. 포기하지 않은 정신은 결국 김천의 K리그2 우승과 승격으로 이어졌다. 정 감독은 마침내 프로에서도 성공이라는 결실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