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머리가 복잡하네요." 김지원(22·GS칼텍스)은 비로소 주전 세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팀이 지면 모두 자신의 책임인 것 같다고 한다.
김지원은 올 시즌 V리그 여자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세터다. 27일 기준으로 세트당 세트(토스 등으로 공격수의 공격 기회를 만드는 플레이) 12.049개를 기록하며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지난 시즌 이 부문 1위에 올랐던 김다인(현대건설)은 11.293개로 현재 2위다.
김지원은 손끝 감각이 남다른 세터다. 불안정한 자세에서도 높고 빠른 토스를 보낼 수 있다. 측면 공격수 대부분 스파이크 타점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높은 토스를 선호한다.
GS칼텍스는 올 시즌(2023~24) V리그 개막 전까지 중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27일 현재 7승 4패, 승점 19로 리그 3위에 올라 있다. 외국인 선수 지젤 실바가 득점 부문 1위(313점)에 올라 있을 만큼 빼어난 기량을 갖췄고, 김지원이 기대 이상으로 '야전 사령관' 임무를 잘 해냈기 때문에 가능한 성적이었다.
김지원은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GS칼텍스의 1라운드 지명을 받은 특급 유망주였지만, 지난 시즌까지는 백업 임무만 맡았다. 지난 7월, 주전 세터 안혜진이 왼쪽 어깨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며 이탈한 뒤 주전으로 올라섰다.
김지원은 백업으로 뛸 때도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전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은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와 항저우 아시안게임(AG) 대표팀에 그를 발탁했다. 주전 김다인만큼 출전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키가 큰 외국 선수들의 수비를 뚫기 위해 노력하며 값진 경험을 쌓았다.
어느덧 2라운드도 1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그사이 김지원도 달라졌다. 그는 "개막 3연승을 거뒀을 때는 배구가 마냥 재미있었는데, 이후 패하는 경기가 생기면서 '내가 한 선택(토스)들이 문제였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라고 말했다. 주전 세터로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커졌다는 의미였다.
김지원은 "(차상현 GS칼텍스) 감독님이 '상대 블로커들에게 토스 의도가 읽히는 것 같다'라고 하셔서, 폼이 쉽게 읽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했다. 세터로서 키(1m74㎝)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블로킹 기여도가 낮아 자책하며 더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다짐하기도 했다. 김지원은 지난 22일 한국도로공사전에서는 개인 한 경기 최다 블로킹(5개)을 해내며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풀타임으로 주전 임무를 소화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경기력이나 결과에 따른 멘털과 체력 관리 노하우가 정립되지 않았다. 당장 한국도로공사전을 치르고 사흘 만에 나선 26일 현대건설전에서는 2세트부터 경기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김지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항상 (팀 내) 두 번째 세터였는데, 풀타임으로 주전을 맡아보고 싶다"라고 했다. 올 시즌 그에게 기회가 왔다. 주전 세터로서 단단해질 수 있는 성장통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