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마트를 찾은 시민이 라면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라면 3사가 일제히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거뒀다. 농심은 물론 삼양식품과 오뚜기 역시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업체들은 마냥 웃지만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물가 안정에 방점을 찍고 있는 가운데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또다시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지난달 30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9% 증가한 55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8559억원으로 5.3% 늘었고 순이익은 76.9% 증가한 500억원이다.
농심 관계자는 "미국, 중국 등 해외법인의 영업이익이 약 200억원이고 국내 법인의 수출이익을 합산하면 3분기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해외 사업에서 거둔 셈"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도 434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24.7% 늘었다. 3분기 매출은 3352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약 72%인 2398억원은 해외 사업을 통해 올렸다. 분기 기준 해외사업 매출이 2000억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양식품의 1∼3분기 매출은 8662억원으로 '올해 매출 1조원'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진라면 등을 생산하는 오뚜기 역시 3분기 영업이익이 830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87.6% 증가했고, 매출은 9087억원으로 10.6% 늘었다.
업계는 K콘텐츠 확산에 따라 한국 라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당분간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3분기 라면 수출액은 6억9731만 달러(약 8995억원)로, 작년 동기(5억6814만달러)보다 22.7%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다만 이 같은 호실적과 핑크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라면 제조사들은 맘 편히 웃지 못하고 있다.
당장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제품 가격을 더 내릴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지난 7월 정부는 라면 업계에 국제 밀 가격 하락 등의 이유를 들어 제품가 인하를 압박했고, 이를 이기지 못한 기업들은 일부 제품 가격을 소폭 인하한 바 있다.
당시 농심은 신라면 가격을 50원 내렸고, 오뚜기는 라면 매출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진라면을 제외한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하했다. 삼양식품은 라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불닭볶음면을 제외한 12개 제품 가격을 평균 4.7% 낮췄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앞서 일부 라면 제품가를 낮춘 것이 '생색내기'에 불과했다며 라면 업계가 인기 제품과 더 다양한 제품으로까지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정부도 또다시 가격 인하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15일 권재한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이 농심을 방문한 데 이어 박수진 식량정책실장이 지난달 23일 삼양식품을 찾았다. 표면상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를 구한 것이지만, 실상은 가격 인하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밀 국제가격 하락을 이유로 라면 가격 인하를 요청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톤(t) 당 밀 국제가격은 216.18달러로 전년 동기(332.43달러) 대비 34.9% 하락했다. 다만 제분용 밀 수입 가격은 지난달 기준 t 당 324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8.6% 내렸으나 평년보다는 3.8% 올랐다.
정부의 압박에 라면 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3분기 영업이익 증가의 상당 부분이 해외 매출에서 발생했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저조했던 전년도 실적의 기저효과일 뿐"이라며 "밀 등 원재료 가격이 들쑥날쑥할 때마다 가격을 임의로 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해외에서 좋은 실적을 거뒀다고 해서 국내 가격을 낮추라는 건 맞지 않는다"며 "정부가 제조사의 어려움도 고려하면서 지원 방안을 제시하고,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데 동참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